[책속에 이런일이?] 박사도 속인 희대의 셰익스피어 위조범
[책속에 이런일이?] 박사도 속인 희대의 셰익스피어 위조범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1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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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글 홍한별 옮김 / 양철북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째로 위조했던 ‘똑똑한 바보’가 있다.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다. 그는 공동품 수집가인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무언가를 추구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에 관한 <밴버드의 어리석음>(양철북. 2009)에 나오는 이야기다.

“윌리엄은 1775년 런던에서 제판공이자 골동품 애호가인 새뮤얼 아일랜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윌리엄은 어떤 일을 시켜도 제대로 못하는 얼뜨기 같은 아이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윌리엄이 머리가 너무 나빠 가르치기가 불가능하며, 계속 수업료를 받는 것은 ”아일랜드 씨의 돈을 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내용이었다. 윌리엄은 자신의 내면세계가 훨씬 재미있었기 때문에 바깥세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p.13)

그 덕분에 윌리엄은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했다. 4년 동안 프랑스의 기숙학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윌리엄이 열여덟 살 때 아버지와 아들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으로 여행을 했다. 그곳은 ‘세속적인 장소 중에서는 처음으로 바가지 상혼이 벌어진 곳’이었다.

“새뮤얼은 감격에 겨워 시인이 ‘앤 해서웨이(셰익스피어의 아내)’에게 구애할 때 앉았다는 의자를 날름 샀다. (중략) 의자를 거실 가장 좋은 자리에 떡 하니 놓아두고 손님들에게 ‘불멸의 엉덩이’가 한때 앉았던 그 의자에 잠시 앉아보라고 권했다. 그 모습을 본 윌리엄은 자기 아버지가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략) 아버지한테 작가로서 능력과 재능을 인정받을 기회였다.” (p.15~p.17)

아버지는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서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내 서재의 절반이라도 뚝 떼어 줄 텐데……”

이후 윌리엄은 책을 수선하는 제책업자에게 2백년 묵은 것 처럼 보이는 산화한 갈색 빛이 도는 잉크를 구입한다. 셰익스피어의 서명을 위조해 가짜 편지를 만들고, 셰익스피어의 계약서를 위조하고 희곡 원고를 베껴 써 그의 초안을 발굴했다며 아버지에게 준다. 마침내는 셰익스피어가 가톨릭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신앙고백도 위조한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학식있는 박사들도 진품으로 믿었을 정도.

이후에도 윌리엄의 위조 행각이 계속되었다. 실제로 그는 <보르티게른>이나 <헨리 2세>와 같은 ‘위대한’ 희곡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필체와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평론가와 독자들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런 위조 행각이 발각된 순간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윌리엄에게는 그런 글을 써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째로 위조했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의 기행이 눈물겹다. 능력보다 꿈이 더 컸던 ‘똑똑한 바보’ 윌리엄.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위조범으로 치부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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