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두 시인 ‘20억 광년의 고독’을 나누다
한일 두 시인 ‘20억 광년의 고독’을 나누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09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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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글 요시카와 나기 옮김 / 예담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한국의 대표시인 신경림과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시詩로 대화를 나눴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예담. 2015)는 두 시인이 나눈 ‘대시집對詩集’ 이다. 몇 사람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쓰는 시를 ‘연시連時’라고 한다. 이와 달리 둘이서 짓는 시를 일본에서는 대시對詩라고 부른다. 둘 다 시인들이 얼굴을 맞대고 며칠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쓰는 게 본래의 모습이지만 요즈음은 우편이나 팩스, 전자메일로 시를 주고 받을 때도 많다. 혼자 쓰는 시와 발상부터 달라 재미있다. 다음은 두 시인이 주고 받은 대시 중 일부다.

“서울 하늘에 별 몇 개 반짝 빛나는 걸 보았는데 / 아침에 깨어 보니 아파트 담장에 / 몇 송이 새빨간 장미가 매달려 웃고 있다 / 태초에 지상에 말이 있고 / 별과 꽃의 눈부신 춤이 있었으니” (신경림)

“별 이름 모르고 싶다 / 꽃 이름 외우기 싫다 / 이름이 없어도 있어도 다 같이 살아 있는데 / 신은 명명 이전의 혼돈된 세계에서 / 다만 졸고 있으라” (다니카와)

"나를 스쳐간 사람들 / 그 이름들을 나는 모른다 / 모두 별이 되어 가슴에 박혀 있을 뿐 / 이름들을 잊어 비로소 아름다워진 / 그 까닭 알려 해서 무엇하랴” (신경림)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 / 가끔 별사탕을 입에 넣는다 / 형형색색의 야릇한 별 / 그 작은 뿔들이 혀 위에서 녹아간다 / 어린 시절의 순진함을 간직하고 싶네” (다니카와) (p.25~p.28)

2012년 일본 쿠온출판사에서 출간한 신경림 시인의 시집 <낙타> 출간기념회에 다니카와 시인을 초청해 두 시인인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대담이 진행되었다. 2014년 1월부터 6개월간 전자메일로 대시對詩를 주고 받아 이 책에 출간됐다.

책에는 대시 외에 두 시인이 서로의 대표작 중에서 좋아하는 시를 골라 실었다. 다니카와 시인의 시로는 ‘20억 광년의 고독’, ‘ 슬픔’, ‘책’이, 신 시인의 시는 ‘겨울밤’, ‘갈대’, ‘떠도는 자의 노래’ 등이다. 또한 두 시인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는 에세이도 수록했다. 35년생 신 시인과 31년생 다니카와 시인. 옮긴이가 둘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같은 연배 남성의 평균에 비하며 꽤 작은 편이다. 나란히 앉은 모습이, 마치 깊은 숲속에서 나온 요정들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나 경력은 다르지만 둘 다 어릴 때 맹목적으로 사랑 받은 적이 있으며, 그 경험에서 필연적으로 생긴 어떤 나약함과, 그 나약함을 덮어 가리기 위해 성장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누에고치 같은 것을 공통적으로 내부에 가지고 있다. 뱃가죽이 얇아서 서로 그 누에고치가 가끔 들여다보일 것이다.” (p.150)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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