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와 12년 러브스토리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와 12년 러브스토리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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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2005. 작가정신)는 일본의 신예 작가 이토야마 아키코(39. 사진)의 독특한 러브스토리다.

여자 주인공 히나코가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오다기리 다카시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바로 뒤이어 `오다기리 다카시의 변명`을 통해 남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막다른 골목에 오다기리 다카시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유명인사였다. 공부도 잘했고 여자도 많았다. 한 살 아래였던 여학생 히나코는 어느 날 재즈바에서 그의 눈도장을 받은 뒤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만다.

발끝까지 떨리는 긴장감을 감수하고 처음 그에게 말을 걸었다. 히나코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것과는 달리 오다기리는 그녀에게 설교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친구를 많이 사겨라, 세상은 생각보다 기분나쁜 곳이라는 등...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진지하게 묻는다.

"그런데 니 이름이 뭐였더라?"

히나코는 한 번에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그는 공부를 잘했음에도 삼수끝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넥타이 메고 다니는 인간들이 꼴보기 싫어서 취직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단골 재즈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소설을 쓰는 것이 그의 일과다. 그가 글쟁이가 되려는 이유는 "아무나 쓸 수 없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졸업 후 식품 회사에 다니던 히나코는 그와의 불분명한 관계를 확실히 끝내기 위한 방법으로 잠자리를 요구한다. 스무살이 되면 드라이한 기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섹스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 하지만 그녀는 단 1mm조차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 "나랑 결혼할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 거야. 나도 결혼할 생각은 없으니까."라는 말만 남긴 채.

언젠가 그는 죽을 생각으로 술과 약을 입에 털어넣고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 신세를 진다. 놀란 히나코가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오지만 그는 2층에서 떨어졌고 등뼈를 조금 다쳤을 뿐이다.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손 한 번 제대로 잡은 적 없다. 어쩌다 가게에서 거스름돈 받아 챙길 때 우연히 스쳐 간 가운데 손가락으로부터 전해져 왔던 전율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동전이 그녀의 손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온기 그것이 전부다.

참다 못한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는 당신한테 뭔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몰라."

히나코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알뜰히 모은 돈으로 독립할 집을 장만했다. 위치는 그가 살고 있는 막다른 골목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녀는 "내가 가까이 살아서 귀찮으면 얘기하세요..."라지만 그는 살짝 등을 돌려버린다. 히나코는 안다. 그것이 그가 기분좋을 때면 하는 동작이라는 것을.

이토야마 아키코는 37세에 `It`s only talk`로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세상을 향한 비스듬한 시선, 유머와 재치 넘치는 신선한 글쓰기를 통해 현재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토야마의 독특한 문체는 두 문장 이상의 말은 거의 하지 않는 오다기리의 대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너무나 솔직한 그녀와 오리무중 속내인 그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이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해피 뉴이어, 생일 축하해." "발렌타인데이잖아요." "나는 올해가 싫어졌어. 빨리 내년이 와야 해." "여자 친구랑 싸웠나봐요?" "어, 내가 얘기 안했던가? 얼마 전에 끝났어."

히나코는 그에게 정성을 담은 초콜릿을 선물로 보냈다. (본문 중)

밥을 먹으면서도 별반 이야기가 없다. 무슨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을 때가 많다.

"무슨 생각해요?" "겨울 생각, 겨울의 시린 공포에 대해서."

"눈이 녹는 모습을요?" "그건 봄이지, 너 바보구나?" (본문 중)

반면 히나코의 마음은 여성 독자들이 자신의 가슴을 칠 만큼 절절하다.

오다기리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때 그의 소변까지 자신의 손으로 치워주고 싶다고 스스로게 고백한다. 그의 작품이 문예지에 가작으로 당선되어 함께 축하주를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된 채 그녀의 방에 나자빠져 있는 그를 보면서도 마냥 좋기만 하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후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수술하러 갈 때도 함께 차로 데려다주는 그가 고맙기만 하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아무 상관도 없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오다기리가 죽으면 그의 뼈 중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슬쩍해 반은 막자 사발에 갈아 카페 오레에 넣어 마시면 자신의 뼈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작은 주머니 속에 넣어 항상 만지작거릴거라고 다짐한다.

아이디가 artella인 독자는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사랑 이야기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든다. 내가 바라보지만 나를 바라보지 않는 남자와의 길고 긴 러브 스토리에 가슴이 아프다"는 리뷰를 남겼다.

그러나 작가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의 속내를 은연 중에 드러내며 둘만의 길고 긴 사랑을 암시한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나는 나를 그녀는 늘상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갈 때만 시간을 정확히 지킬 뿐이다."(본문 중)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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