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부는 거대한 독을 생산하는 공장
나의 내부는 거대한 독을 생산하는 공장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2.0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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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이승우 글 / 예담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하얀색 책 표지에 ‘독’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져 있다. 그것이 까만 연기처럼 주변으로 퍼지고 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 <독>이 20년 만에 재출간됐다. <독>은 <소설과 사상>에 ‘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고 1995년는 <내 안에 또 누가 있나>로 출간됐었다. 책은 인간 안에 숨어있는 있는 악이 나쁜 사회와 만나서 어떻게 사람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준다.

소설은 대필 작가 ‘나’, 임순관이 한 달 정도 쓴 일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나는 자폐적인 성향의 서른 네 살 남자다. “나는 못생겼고, 남성다운 매력이 하나도 없고, 지저분하다. 나는 추하다.” 나는 대필 작가로 밥벌이를 하는 이외의 모든 사회적인 교류를 꺼리며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내가 자서전 대필 계약을 맺은 ‘손철희’는 사형수다. 그는 아버지까지 살해했고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처지다. 그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나는 그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자서전을 대필을 의뢰하는 여인이 또 한 명 있다. 나는 그녀 ‘민초희’로부터 거액을 받고 나의 시간을 그녀에게 팔기로 한다.

“나는 내 육체의 내부가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내 안에는 쓸 만한 것이라고는 없다. 나는 아프다. 나는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독을 마시며 산다. 그런데 그 독은 내 안에서 토해져 나온 것이다. 독은 대기 가운데서 내 속으로 들어오고, 내 안으로 들어와 부글부글 끓으며 더 많은 독을 양식해낸다. 내가 숨을 내쉬는 순간 그것들은 나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다시 대기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내부는 독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이고, 이 세상은 그 독이 유통되는 거대한 시장이다. 시장인 이 세상에서 내가 소비자로서 매일 들이마시는 독은 실상은 나의 내부에서 생산되어 나온 것이다.” (p.167~p.168)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세상에 퍼져있는 독에 중독 된다. 내가 마신 그 독은 다시 내뱉어져서 누군가에게 스며든다. '독'은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질 않을 뿐이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책을 덮고 나면 몸 안에 독이 퍼지듯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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