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 대사로 비빈 ‘짜장면 한 그릇’
촌철살인 대사로 비빈 ‘짜장면 한 그릇’
  • 북데일리
  • 승인 2007.08.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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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좋은 동화책은 진중하면서 재미있다.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물론 가슴에 남는 ‘싸한’ 무언가를 남긴다. 이는 아이와 학부모 모두에게 오래 읽히는 작품들의 공통점이다.

‘창작과 비평’이 제정한 `제10회 좋은 어린이 책` 창작 부문 대상작 <짜장면 불어요!>(창비. 2006)가 바로 그런 책이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 ‘3일간’ ‘짜장면 불어요!’ ‘봄날에도 흰 곰은 춥다’ ‘지구는 잘 있지?’ 총 5편의 작품을 엮은 동화집이다.

표제작 ‘짜장면 불어요!’는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 하는 열네 살 용태의 이야기. 줄거리가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제 막 배달 일을 시작하는 용태의 인생선배로 배달원 ‘기삼’이 등장한다.

사회초년 생 용태에 비해 기삼은 능청맞기 짝이 없다. 짜장면의 역사에서 철가방의 위력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이른바 ‘짜장면 박사’다. 기삼의 훈수는 웃고 넘기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학벌위주의 사회,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조급증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기삼에 맞서는 용태 역시 만만치 않다. 끊임없이 “왜”라는 반문을 던진다. 아직 세상에 발을 딛지 않은 용태의 눈에 기삼은 이해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어른이다.

중요한 것은 기삼의 모습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점.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고, 철가방 하나로도 꿈을 펼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용기는 건강함 자체다. 기삼이라는 인물은 작가 이현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중추적인 존재다.

용태와 기삼의 토론은 매우 역동적이다. 다양한 주제를 건드릴 뿐 더러, 시각 또한 다양하다. 다음은 그 중 한 대목.

“공부를 못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무수히 많아. 철가방을 들 수 도 있고, 춤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너 공부하는 거 좋아하냐?”

“해야 하니까 하는 거죠. 좋아서 공부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형은 평생 철가방이나 들고 다닐 거예요?”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뭐 철가방 드는 일에 푹 빠져있지. 넌, 뭐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넓은 데 설마 너한테 딱 맞는 일이 없겠냐?”

이처럼 끊임없이 엇갈리는 두 인물의 생각 차이에서 독자는 다양한 의견을 갖게 된다. 이 책이 토론 거리로 잘 어울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 촌철살인 대사 읽기의 재미, 이웃집 아이들처럼 친근한 캐릭터는 ‘짜장면 불어요!’에 깃든 또 다른 장점이다.

이외에 사춘기 소년소녀의 설렘을 그린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 이혼과 가출 문제를 다룬 ‘3일간’ , 끈끈한 가족애가 엿보이는 ‘봄날에도 흰 곰은 춥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완성된 ‘지구는 잘 있지?’ 모두 편안하게 읽힌다.

작가 이현은 2004년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분에 단편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가 당선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짜장면 불어요!>는 그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이후 열다섯 살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들의 스캔들>(창비. 2007)을 발표 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이현의 작품은 단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묘미를 살려 내는 솜씨가 남달랐다. 이야기를 구성해 가는 방법도 상당히 창의적이다. 특히 청산유수로 쏟아 내는 말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한다” - 윤태규,원종찬 <짜장면 불어요!> 심사평 중 -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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