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이책]신경숙 “책의 힘 믿는다”
[오늘은이책]신경숙 “책의 힘 믿는다”
  • 북데일리
  • 승인 2007.08.1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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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소설가 신경숙의 문장은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한 없이 뻗어가다가도 읽는 이의 가슴에 머문다. <풍금이 있던 자리> <딸기밭>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그랬고 6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리진>(문학동네. 2007)이 그렇다.

신경숙의 가장 큰 매력은 문체다. 웅숭깊은 사색을 힘차게 길어 올리는 쉼표와 마침표. 그것이 신경숙 소설의 생명력이다. 신작 <리진>은 신경숙의 목소리를 가장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리진, 아름답게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

조선 궁녀 ‘리진’의 복원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생몰연대가 전혀 나와 있지 않은 리진의 어린 시절을 쓰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전했다. 사료가 아닌 ‘상상력’을 불어 넣을 때야 말로 소설가로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는 뜻일 터.

반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세 차례나 찾은 파리에서 리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을 때라고. 그는 “그 흔적 없음이 오히려 글을 쓰게 했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힘들었다기 보다는 너무나 허무했다”고 말했다.

이후, 신경숙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리진의 성장과정이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 신경숙은 괴로워했다. 특히, 리진이 몽유에 시달리며 새벽마다 파리거리를 헤맬 때, 을미사변을 만나 왕비가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 했을 때는 영혼이 먹먹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사력을 다해 써냈다. 아름답게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리진과 주변 사람들의 일생을 일구어 내며 근대의 입구에서 처절하게 혹은 아름답게 좌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처절한 좌절을 정면으로 주시하고 나면 오늘날의 이 현실이 새롭게 보일 것 같았어요”

신경숙의 말이다. 온 힘을 다해 아니, 영혼까지 더해 완성시킨 장편 소설 <리진>. 이야기에서 빠져 나온 신경숙은 한 결 편안해 보였다. 이어 그는 평소 독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들려줬다.

“나는 책의 힘을 믿는다”

어린 시절, 신경숙은 책을 좋아하는 오빠 덕에 독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가의 꿈을 품게 된 것도 이즈음. “책 읽는 습관이 나를 작가로 이끌었다”고 할 만큼 ‘책의 힘’을 믿는 그다.

신경숙은 한 문장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직접 경험이 된다는 점에서 책읽기의 중요성을 찾았다. 그는 따지고 분석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친구에게 듣는 편안한 느낌의 독서법을 즐긴다. 이는 특히, 초보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읽기 방식이라고.

그는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독서 습관도 귀뜸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 마다 자신만의 노트 한 권을 마련하라는 것. 여기에 새로운 언어의 정확한 뜻과 쓰임을 찾아 적다 보면 절로 글쓰기 실력이 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굴렌굴드의 피아노, 그리고 열정

신경숙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굴렌굴드, 피아노 솔로>(동문선. 2002)를 꼽았다.

“피아노 속으로 들어가듯 연주하는 굴렌굴드의 열정을 좋아했어요. 굴렌굴드가 내가 태어나기 한해 전에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완전히 그만두지만 않았더라면 어디라도 그가 있는 곳을 찾아 갔을 겁니다”

신경숙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 책의 주인공 굴렌굴드(1932?1982)는 전설의 피아니스트. 서른두 살 이후 연주회를 거부한 채 스튜디오 녹음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만 청중과 만나고자 했던 괴짜이기도 하다. “바흐 음악을 가장 완벽하고도 자유스럽게 해석한 연주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굴렌굴드, 피아노 솔로>는 굴렌굴드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이다. 저자 미셸 슈나이더가 굴렌굴드의 대표 연주곡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조를 차용해, 그의 음악적 생을 구성했다.

신경숙은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마음속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맺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먼 연주장이라도 자신의 의자를 들고 다니는 굴렌굴드의 괴팍성을 좋아했다는 신경숙. 그의 가슴 속에 용솟음치는 열정이 리진 이후, 어떤 인물을 창조 해 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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