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복어의 별명은 '미인'의 젖...얼마나 맛있길래
[책속의 지식] 복어의 별명은 '미인'의 젖...얼마나 맛있길래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2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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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글 / 휴머니스트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과거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먹었던 음식이 있었다. 무슨 음식일까. 바로 복어다. 복어는 청산가리의 10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가졌다. 문제는 복어가 가진 독특한 미감이 세계의 별미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중국시인인 소동파도 복어 맛을 가리켜 “사람이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 극찬한 바 있다.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는 복어를 두고 별미 중의 별미라고 말한다. 특히 옛날에는 ‘서시(西施,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미인)의 젖’이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복어 때문에 산란기 때 이것을 먹고 죽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복어에 관한 내용은 <식탁 위의 한국사>(휴머니스트.2013)에 자세히 등장한다. 현대 한국 식탁의 기원을 가까운 20세기에서 찾으며, 음식을 둘러싼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함의를 찾고자 하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복어의 음식사는 전근대시대로 오면서 식민시대와 얽힌다. 도시의 굶주린 사람들이 일본인이 버린 복어의 내장이나 머리를 끓여 먹고 부지기수로 죽었다는 것. 당시 이런 현상이 당연히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매년 늦겨울에서 봄만 되면 서해안 일대에서 복어를 잘못 먹고 죽는 사례가 식민지 시기 내내 이어졌다.

복어 맛에 사로잡혀 법률을 뒤엎은 이야기도 있다. 앞선 조선의 사정과 달리 일본에서는 근대 이후 복어 식용에 대한 문제를 법률로 다스리고 있었다.

1895년 4월 17일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을 위한 협상이 한 여관에서 열렸다.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 대표 리훙장이 회담에 참석했다. 당시 날씨 때문에 음식 재료가 마땅치 않아 여관 여주인은 어쩔 수 없이 복어로 음식을 마련했다. 그 다음 날 이토 히로부미는 생선 맛이 좋았다고 칭찬하며 생선 이름을 물었다. 여주인은 복어로 요리 했다고 고백했고 제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는 고향 야마구치현으로 돌아가 복어 식용 금지령을 해제하도록 지시했다. 복어 맛에 사로잡혀 법률을 뒤엎은 것이다.

책은 이처럼 한국 사회와 음식문화를 인문적인 시선에서 살피는 교양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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