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위화의 글쓰기훈련...결말 없는 이야기 읽으며 상상
[책속의 명문장] 위화의 글쓰기훈련...결말 없는 이야기 읽으며 상상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2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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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글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허삼관 매혈기>를 쓴 중국 작가 위화의 독특한 소설쓰기 훈련이 화제다. 그는 앞뒤 부분이 뜯겨나간 문학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상상력 훈련을 했다.

이 내용은 열 가지 단어로 현대 중국을 보여주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3) 중 ‘독서’에 관한 이야기에 등장한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재미를 준다.

마오쩌둥 어록 말고는 변변한 읽을거리가 없던 중학교 시절 그는 이른바 ‘독초’라 불리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불에 타 없어지는 운명을 피한 ‘문학의 생존자들’이 중학생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책들이 이미 수천 개의 손을 거쳐서인지 그의 손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심하게 낡은 상태였다. 앞부분이 찢겨 나간 책도 있었고 상태가 온전한 것은 한 권도 없었다. 그는 책 제목도 작가도 누구인지 몰랐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어떻게 끝나는 지도 몰랐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뜨겁게 달궈진 솥 위의 개미떼가 이리저리 구멍을 찾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이 이야기에 이어지는 결말을 알아내려 애썼다.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읽은 소설들도 똑같이 시작과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중략) 매일 밤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나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부지런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처음부터 나의 상상력이 훈련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소설에 감사해야 했다. 바로 이 소설들이 처음으로 나의 창작 열정에 불을 붙여주었고, 내가 여러 해가 지난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외국 소설도 역시 시작과 끝이 없었다. (중략)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문학이 돌아왔다. 그 시기에 나는 아주 많은 외국 소설을 사서 읽었다. 그 가운데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소설도 있었다. 3분의 1쯤 읽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알고 보니 바로 이 책이었다! 여러 해 전에 가슴을 졸이며 읽었던 시작도 끝도 없었던 첫번째 외국 소설이 바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었던 것이다." (p.81~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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