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향해 나의 시선을 고정 시키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온 몸이 마비될 것 같은 전율이 용솟음치고, 휘르륵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마저 로맨틱한 선율이 되어 전신을 감싼다. 누구나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린다면 거울을 보는 순간조차 나 아닌 타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젊은 청년이 한명 있다. 시민 계급 출신의 젊고 잘생긴 베르테르. 그 풋풋한 젊은이는 어느 날 자신의 삶에 운명처럼 뛰어든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이기에, 두 사람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견고한 벽 앞에 가로 놓여있다.
그러나, 샤를로테를 보는 순간 베르테르는 온 몸이 마비될 듯 한 전율을 느낀다. 그녀를 보면 볼수록 사랑은 커져간다. 이미 배우자가 있는 상대를 사랑하는 고뇌와 고통이 서글픈 격정이 되어, 청춘의 독약처럼 베르테르의 온 몸에 번져가기 시작한다.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소담. 2004) 줄거리다. 1774년, 유부녀를 사랑했던 괴테 자신의 경험으로 탄생된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괴테’자신이다.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베르테르가 겪는 공황의 상태나 주인공의 생일, 즐겨 읽었던 책 등이 동일하다는 점으로 보아, 베르테르를 괴테 자신과 동격화 했다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고통이 비극으로 끝을 맺게 되지만, 기묘하게도 비극의 서사가 던지는 의미는 희극일 때보다 훨씬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괴테 스스로 떠안았던 사랑의 환희, 그리고 버려야만 했던 사랑의 좌절. 이 모든 순간의 깊이를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쓴 소설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 할 때는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슬픈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상처받지 않는다면 청춘이 아니다. 풍파 없는 단조로운 항해보다는 갖은 폭풍을 만나면서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청춘이 가장 청춘답다. 젊음의 한 때, 찬란한 여명이 떠오르는 것처럼 새파란 인생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운명의 상대 때문에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짝사랑에 피멍이 들고,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전제가 기정사실화 되었다고 하더라고 사랑은 사랑이다. 베르테르가 느꼈을 심장의 파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자신의 사랑도 끝이 보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지금 보지 못하면 미쳐 죽어버릴 것만 같다!’ 는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라 터질 듯 폭발하는 감정의 선율.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할 때 느낄 수 있는 나약함과 처절함, 심지어 비굴함까지.
베르테르는 편지로 로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또 고백 하면서 금지된 사랑의 열병을 승화시킬 수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이라는 연못에 첨벙 빠져 허우적대는 세상 모든 청춘들에 대한 아픔의 찬가이다.
[한설미 시민기자 mind073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