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소리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
가을 풍경소리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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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슬기와 지혜가 한 권의 책으로 탄생됐다. `얕은 물도 깊게 건너라`(2005. 미네르바)는 부처님과 선인들이 전하는 작은 이야기들로 현대인으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되새기도록 만든다.

지은이 최연 선생은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글쓰기가 자유로워진 세상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는 말로 표지를 연다.

저자는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누구든지 찰나의 무아지경에 놓이는 순간 꽃잎과 나뭇잎같은 사연들이 가슴 속을 파고든다고 말한다.

정직한 마음은 나를 구하고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어느 절에서 주지 스님이 동자승들에게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 한마리씩 죽여 가지고 오면 그걸 보고 학승들의 서열을 새롭게 정하겠다"고 말했다. 동자승들은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새 한마리씩을 죽인 다음 그것을 가지고 주지 스님 앞에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평소 주지 스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오던 동자승이 아직 살아있는 새를 품 안에 안고서 가장 늦게 나타났다. 그 동자승은 주지 스님에게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이 세상에 아무도 안 보는 곳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지 스님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텐데..."라고 묻자 그 동자승은 "어딜 가나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짐승이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음을 주지시킨다.

한 어리석은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데 똥개 한 마리가 그의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그 개는 특이하게도 사람처럼 말도 하고 웃을 줄도 알았다. 어리석은 자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똥개에게 말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똥개가 사람을 갖고 노네, 저리 썩 가지 못해"라고 하자 똥개는 말했다.

"나같은 똥개가 어쩧게 사람을 갖고 놀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꼭 좀 대답해 주시오." 라고 하자 어리석은 사람은 못 이기는 척하며 궁금한 게 뭐냐고 물었다.

똥개는 "왜 사람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 돈이 많고 적음 그리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고 차별까지 하는 것입니까?" 질문을 들은 어리석은 자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하나는 말고 둘은 모르는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슬기로 되받아준다.

한 스님과 장사꾼이 함께 길을 가다가 주막에 들러 밥을 먹었다. 반찬으로 참새구이가 나오자 장사꾼은 "스님이 어떻게 고기를 먹어"라며 냅다 자신의 입에 넣어 버렸다.

밥을 먹은 뒤 한참 길을 가던 두 사람 앞에 시냇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건널 수가 없어서 스님이 장사꾼을 업고 시냇가를 건넜다.몇 걸음 건너가던 스님은 "지금 혹시 돈을 가지고 있소?"라고 장사꾼에게 물었다. 장사꾼은 "장사꾼이 돈 없는 거 보았소?"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래요? 그렇다면 어찌 스님이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있겠소"라며 장사꾼을 냅다 물에 던져버렸다.

자신의 재능을 숨어있음을 일깨워준다.

한 절에 학승이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노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해 항상 고민에 빠져있었다. 하루는 노스님이 학승의 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마침 겨울이라 학승은 자신의 방에 화로를 가져다 놓고 불을 때우고 있었는데 노스님이 들어왔을 때는 이미 화롯불이 다 꺼져 방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노스님이 "화로에 불이 다 꺼졌느냐"라고 묻자 학승은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노승은 화로를 자신의 앞으로 끌고와 열심히 뒤지더니 아주 조그만 불씨를 집어내며 "이것은 불씨가 아니더냐"라고 반문했다.

책 서문에는 "새벽 공기를 가로질러 흐르는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실려온 선인들의 자잘한 속내를 들추는 것 또한 가을을 나는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사진 = 영화 `동승` 스틸컷)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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