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끝에 가보니 '웃는 울음'이...천양희 시인의 깨달음
눈물 끝에 가보니 '웃는 울음'이...천양희 시인의 깨달음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19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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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천양희 글 / 문예중앙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나는 30여 년의 세월을 눈물로 애도했다. 그러나 아무리 속 아픈 눈물이라도 그 끝은 있는 것이다. 눈물의 끝에서 웃는 울음이 생겨났다." (p.26~p.27)

한국의 대표 여류시인 천양희의 산문집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문예중앙. 2014)에서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녀는 올해로 시인이 된 지 50년, 혼자 산 지 40년이 됐다. 이 책에는 오랫동안 고독과 맞서며 시를 써온 그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책에 따르면 천양희 시인의 대표시 ‘직소포에 들다’ 에는 시인의 아픈 상처가 녹아 있다.

“부모 자식 다음에 아리는 말이 부부라는데, 부부의 길은 국토종단의 길보다 더 먼 길이라는데, 나는 1974년 한 해 모두를 다 잃었다. 부모님은 그해 세상을 떴고 아이도 남편도 길 밖의 사람들처럼 멀어져갔다. 그땐 내가 하는 말도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세상의 모든 인연이 끊어진 자리에 내가 있었다. 모든 관계는 고통이었다. 자존심은 말없는 폭력에 짓밟혔고 사랑에 대한 믿음은 깨어진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p.18)

아이와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산 지 5년 후 그녀가 찾아간 곳이 내변산 직소폭포였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서울에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시인이 건져 올린 것은 살아야겠다는 의지였다. 그 후로 그녀는 고립과 고독, 시를 자신의 동반자로 삼았다.

“직소폭포를 만난 지 13년 만에 ‘직소포에 들다’라는 시를 완성했다. 죽음에서 나를 건져낸 직소폭포! 내가 이 시를 가장 아끼고 대표시로 생각하는 것은 내 정신의 긴 투쟁 끝에 살아남은 시이기 때문이다.“ (p.21)

이 밖에도 자신의 삶과 독서에서 건져낸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사랑할 땐 목숨을 바쳐 절실하고 진정하게 해야 하고, 성공은 부나 지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성취하는 것이며, 행복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갈고 다듬어진 그녀의 사유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다음은 그녀의 시 ‘직소포에 들다’의 일부다.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 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水宮을 (중략)” (p.23)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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