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세요? 나도 아파요" 삶의 고통 치유하기
"아프세요? 나도 아파요" 삶의 고통 치유하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6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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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茶母); 아프냐, 나도 아프다
견모(犬毛); 취하냐, 나도 취한다
주모(酒母); 장난하냐, 고마 일라그라. 계산해야지

두어 해 전 모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대사의 패러디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아픈’ 곳을 도려내 새살을 북돋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이 아픔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했을 때, 그 고통의 언저리를 앙큼하게 애무해주는 드라마야말로 현대인의 최고 처방전이다.

그런데 좌포청 종사관 이서진이 ‘다모’에 모습을 드러내기 몇 해 전, 천년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강호에 조용히 섬섬옥수를 내려놓은 사람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윤학 시인이다. 시인의 비급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2000. 문학과지성)를 들춰보자.

“삽날에 목이 찍히자/뱀은/떨어진 머리통을/금방 버린다//피가 떨어지는 호스가/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뱀은/쏜살같이/어딘가로 떠난다//가야 한다/가야 한다/잊으러 가야 한다” (‘이미지’)

초장부터 `약발`이 좀 강하게 날아옵니다. 이 세계에서는 잘 안 쓰는 연장을 쓰다니요. 알만 하신 분이. 그러나 멀리는 못 갔을 겁니다. 연장에 시인의 손도 다쳤으니 말이죠.

“가끔,/필요한 물건을 들고/찾을 때가 있다//방금 전까지/여기 있었는데/감쪽같이 없어질 때가 있다//어디 갔을까,/어디갔을까,/손이 어디 갔을까//주위를, 빙빙 돌 때가 있다” (‘손’)

손을 분실했으니 이 일을 어쩌지요. 허나 정작 본인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풍뎅이처럼 빙빙 돌고만 있으니 딱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빠져나갔는지/무엇을 잃어버렸는지//시멘트 바닥 위에 파인/작디작은 구멍들,/슬레이트 처마의 골을 따라/줄 서 있네//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빗물을,/다 비워내고 기다리고 있네//텅 빔을,/텅 빈 속만큼/들여다보고 있네”
(‘이별’)

어느 시인은 백년을 기다려 연밥 한 그릇 얻어먹는다 하고, 어느 시인은 탑 사이 천년의 사랑을 기다린다고 하는데, 시인은 시멘트 바닥에 누워 허송세월 할 모양입니다.

“이파리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무슨 흉터마냥 꼭지들이 붙어 있다//먹성 좋은 열매들의 입이 실컷 빨아먹은 감나무의 젖꼭지//세차게 흔드는 가지를/떠나지 않는 젖꼭지들//나무는,/아무도 만지지 않는/쪼그라든 젖무덤들을/흔들어댄다//누군가를 떠나보낸/저 짝사랑의 흔적들을” (‘꼭지들’)

역시 아픈 사랑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군요. 누군가 저 상처의 흔적들을 치유해줘야 할 듯 합니다. 또 연장을 써야만 하나요.

“무수히 떡메를 맞은 자리에/엄청난 둔부 하나가 새겨졌다//벌과 집게벌레가 들어와/서로를 건드리지 않고/살아가고 있다, 무언가를/열심히 빨아먹고 있다//저긴,/그들만의 천당이다//누군가에게/내 상처가 천당이 될 수 있기를//내가 흘리는 진물을/빨아먹고 사는 광기들!//다시,/열매들이 익어가고 있다/누군가 떡메를 메고 와/열매들을 털어가기를/더 넓게 더 깊게/상처를 덧내주기를//누군가에게 가는 길,/문을 여는 방법,/그것밖에 없음을” (‘늙은 참나무 앞에 서서’)

툇! 멱살 잡히고 떡메질 당했으니 이제 정신이 바짝 들었을 겁니다.

“사방으로 찢어지는/고통의 연속이 생인 것을,/악몽의 연속이 생인 것을,/새겨주고 심어주는 대추나무.//아직도 모자라, 뒤늦게/눈곱만한 꽃들을 다닥다닥/피워낸다.//수십 개의 늘어진 가지가/이파리보다 많은 대추알이/그 무엇보다 많은 대추꽃이/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다시 꽃이 핀다’중에서)

햐아, 그렇게 대추꽃은 피는 것인가 봅니다. 결국 생의 고통을 치유하는 시인의 처방전은 ‘감참나무대추탕’인가요. 그 환한 대추꽃이 필 때, 주변의 사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던 시인의 손이 어느 한 곳에 멈추게 됩니다. 자, 고개를 들고 이 용한 시인과 눈을 맞춰보세요.

“한 마리 개미를 관찰한다//돋보기로 보는 개미/흐릿하게 확대되어/어지러운 마음속에 사로잡힌다//얼마나 추웠을까?//초점을 맞춘다” (‘연민’)

......, 아픈 곳은 어떤가요?

(사진 = 출처 http://blog.naver.com/gulsame)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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