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선우와 그의 `행복한 사물들`
시인 김선우와 그의 `행복한 사물들`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3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김선우는 지난 96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등단한 지 5년만에 그녀의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을 펴냈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두고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동시에 살아 있는 몸을 신전으로 삼아 뭉클한 생명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시집 `도화아래 잠들다`를 발표하고 상까지 받더니 슬그머니 잠적했다. 그리고 일 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산문집 한 권들고 불쑥 돌아왔다. 스스로 "지구 별을 한 바퀴 돌아왔다"고 말하면서 버젓이 내놓은 책은 `김선우의 사물(事物)들`(2005. 눌와)이었다.

이번 글의 정체는 지난 2002년 3월부터 3년 4개월동안 CJ 사외보 `생활 속의 이야기`에 연재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책을 내면서 시인은 가슴 속에 한가지 바람을 품었다. 달력 3개를 바꾸는 동안 긴 호흡을 동원해 풀어쓴 글인만큼 독자들 역시 하루에 하나씩 천천히 꼭꼭 씹어가면서 읽었으면 한단다.

김선우가 또박또박 써내려간 그녀의 사물들 20가지는 자신의 것인 동시에 우리들의 것이다. 집 안을 꽉 채운 그 `사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때때로 자기 자신과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힘까지 발휘했다.

누군가는 그녀의 책을 읽게 되었다는 말보다 `그녀를 만났다`라는 말이 맞다고 했다. 이 책의 사물들은 시인의 손길로 인해 면벽하는 수도승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애뜻하고 분주한 손길이 된다는 평도 있다.

`숟가락`은 젓가락과 달리 물을 뜰 수 있다. 두 손 오므려서 조심스레 물을 덜어내듯이 숟가락으로는 정성을 다해 물과 밥과 죽을 뜰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먹거리가 삶의 일부를 차지했던 때부터 숟가락은 존재해왔다. 수많은 이들의 입술을 적시면서 그들에게 생명의 유기체를 전달해왔다. 그리고 숟가락 곁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의 입에 밥 한숟갈 떠넣어주는 것으로부터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해 오셨다.

`쓰레기통`은 낙관주의자다. 냉철한 현실주의자며 지극한 쾌락주의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라는 버려지는 것들을 주워모으는 이율배반적인 삶에도 의연하다. 나는 한 때 `음식물 쓰레기`라는 합성어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량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인정머리 하나 없는 세태가 음식물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시계`는 잘라놓은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시킨다. 그 속에 세월과 연륜이 담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 12개가 가득 차 있는 시계보다 그 숫자들이 모두 날아가버린 뒤의 텅 빈 시계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사람들과 약속 시간을 정할 때 "정각 2시에 보자"라는 말보다 "사과꽃이 필 때" 혹은 "첫 눈이 내릴 때" 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혹은 그럴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남자가 주변 사람 아랑곳없이 `휴대폰`으로 일상의 불만을 여과없이 털어내도, 영화관 앞 좌석에 앉은 여자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이상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철 속 모든 이들이 휴대폰으로 소통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오락을 하고 내가 모르는 일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그 순간 사람들이 휴대폰과 더불어 전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나 또한 그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되는 것을 느낀다.

`휴대폰`을 말랑말랑한 촉감의 사물로 변신시킨 뒤 진한 커피에 적신 뒤 으깨 먹는 상상을 하며 혼자서 키득키득 웃어본다.

(본문 중)

김선우의 수필집 자체에 반가움을 표한 한 독자는 "한 편 한 편 읽어본 다음 가슴에 책을 한 번 품어보고 되새김질할만한 가치가 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을 때와 동질의 느낌이 전달되어 좋다"고 평했다.

또 다른 독자는 "김선우, 그녀의 글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같은 시인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라며 인터넷 서점을 통해 베스트 상품으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시인 김선우는 조만간 스크린을 통해서도 필력을 선보일 참이다.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했던 무용가 최승희다.

(그림 = 살바도르 달리 作 `폭발하는 순간 녹는 시계`)[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