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언어가 생각능력을 떨어뜨린다?
[책속의 지식] 언어가 생각능력을 떨어뜨린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10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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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이병주 글 / 가디언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생각을 타인에게 전하는 언어는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반해 언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때로는 인간의 인지능력을 축소하고 틀을 만들어 생각을 가두는 장치가 된다는 것.

<촉>(가디언. 2012)은 이런 현상을 ‘언어의 그늘’이라고 전한다. 현실에 대한 설명이나 언어화가 오히려 진실을 가린다는 의미다. 심리학자 조너선 스쿨러가 얼굴에 대한 기억이 언어에 의해 얼마나 방해받을 수 있는지를 연구하면서 이를 증명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은행에 강도가 들어온 영상을 30초간 보여줬다. 강도의 얼굴이 카메라에 정확하게 잡혔지만 금세 지나갔다. 동영상이 끝난 후 20분 동안 실험 참가자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한 후 테스트에 들어갔다. 비슷하게 생긴 여덟 사람의 얼굴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고 진짜 강도를 가려내는 것이다. 참가자 중 64%가 강도의 얼굴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5분 동안 강도의 얼굴을 가능한 한 자세히 서술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강도의 머리카락이 어떤 색인지, 수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그 후 이들에게도 똑같이 여덟 사람의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강도를 가려내는 테스트를 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강도의 얼굴을 언어로 묘사한 후 오히려 진범을 맞히는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겨우 38%뿐이었다. 그만큼 인지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 연구는 우리가 생각을 언어로 바꿔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생각을 망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몸으로 느끼는 ‘감’이나 ‘촉’을 언어와 논리가 가로막는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여덟 명의 얼굴은 모두 강도의 얼굴과 언어적인 측면에서 비슷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강도의 얼굴을 언어로 묘사하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섬세한 요소들은 사라지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습만 남게 된다. 언어화가 비언어적 정보를 생략하게 만들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59쪽~61쪽 중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을 언어에 제대로 담기 어렵다. 표현하는 순간,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혹시 언어의 감옥에 갇혀 세상의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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