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개`같은 人生 `고통속 눈부신 세상`
`김훈의 개`같은 人生 `고통속 눈부신 세상`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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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개`(2005. 푸른숲)의 작중 화자 보리는 작가가 3년 동안 직접 길렀던 진돗개에서 모티브를 따왔단다. 개가 너무 사나워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주었다는 김훈은 가끔씩 눈에 띄는 개들을 보면 그 진돗개 생각이 난다고 털어놓는다.

부제가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인 소설에서 작가는 기르던 진돗개가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큰 도사견에게 겁없이 달려들어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를 작품 속 보리가 힘세고 못생긴 개 `악돌이`와 싸우는 장면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일간지 문학 담당 기자들은 날카롭게 응축되어 있었던 `김훈의 문체`가 `개`에서는 쉽게 읽히면서도 많이 이완됐다고 평가했다. 만약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 `개`라는 소설을 읽는다면 누구의 글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김훈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문체로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렇듯이 수다스럽게 그리고 설명하는 방법으로 썼다"고 대답했다.

진돗개 보리는 수몰지구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바닷가 가난한 어부의 집으로 옮겨간다. 경유냄새와 발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는 어부와 서서히 정을 나누면서 암캐 흰순이를 사모하기도 하고 악돌이라는 놈과 피 터지는 싸움도 벌인다.

보리는 주인집 딸 영희가 다니는 학교로 쫓아가 교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깔깔거림을 훔쳐보기도 하며, 사모했던 흰순이가 사람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여느 때와 같이 그물을 들고 고기잡이 배에 올랐던 주인이 썰물에 휩쓸려 죽음의 바다로 떠난 것도 모른 채 그가 보고 싶어 봉분을 파헤치기도 한다.

"나는 파고 파고 또 팠다. 파다 보면 주인님의 경유냄새와 발냄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파헤치면 주인님이 벌떡 일어나 땅위로 걸어나올것도 같았다. 그러나 파헤친 자리는 언저리의 흙으로 다시 메꾸어졌고 나는 수염으로 흙 속을 들이 밀었지만 주인님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 때 무덤가로 오던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이 미친 놈이~`라면서 지팡이로 나를 계속 때렸다. 나는 멀리 도망쳤다가 다시 할머니 곁으로 와서 조용히 바닥에 엎드렸다. `아무리 파헤쳐도 못 살아나, 그게 죽음이야.` 할머니는 나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본문 195~196쪽)

김훈은 개를 작중 화자로 삼은 이유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인간과 세상의 관계 특히 생에 대한 직접성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관능과 직관을 통해 삶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체를 좇다 보니 개가 어울릴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또 "개의 후각과 청각은 인간보다 수백배나 발달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삶의 두께가 훨씬 두텁게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탈고하고 나니까 개한테 미안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산골짜기와 들판,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굳은 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본문 130~131쪽)

독자들은 책을 읽고 `눈물겨운 견생(犬生)역정`이자 `진중한 성장 소설`이라는 데 공감했다.

"보리야! 열심히 달릴 거지? 그래 함께 뛰어 보자구나...영희처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날아도 볼까? 가슴 속 벅찬 소리가 들리는데, 왜 또 눈물이 나는 건지...나도 엄마처럼 나이를 먹었나봐"

"칼의 노래가 화려한 만찬이었다면 `개`는 우리들이 매일 먹는 뚝배기 된장국과 같은 소설이다.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허기를 달래주는 밥과 된장국처럼 일상에서 느끼는 문학적 허기를 달래준다. 그동안 서양의 이질적인 고전들때문에 속이 깍인 사람이라면 된장국처럼 개운한 김훈의 소설로 시린 마음을 어루만져보는 것은 어떨까?"

"개는 성장소설이지만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저자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이 투과된 듯한 느낌이 짙게 다가온다."

"말투가 계속 바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처음에는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숫놈이다.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라고 나온다. 그런데 두페이지 뒤에는 "그때, 엄마는 우리 형제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어. 우리 엄마 젖꼭지는 모두 열 개인데, 그 열 개에서 다 젖이 콸콸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라며 어미`다`가 `어`로 바껴버렸다. 나는 무엇보다 `칼의 노래`를 썼던 김훈 선생이 개를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됐을 지가 가장 궁금하다."

한편 김훈의 소설 `개`는 오는 10월 1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열릴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종` 중 한권에 선정됐다.

(사진 = 스카이HDTV, 진도군청 제공)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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