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여행 대신 송충이를.. 도종환 시인, 가난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
[책속에 이런일이?] 여행 대신 송충이를.. 도종환 시인, 가난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09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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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 글,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도종환 시인의 에세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한겨레출판. 2011)에서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못가고 송충이를 잡아야 했던 이야기가 가슴 저릿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은 거덜나고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을 때 도서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나도 참고서나 문제집 한 권씩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지만 참고서를 사줄 아버지가 옆에 있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같이 갈 수 없었고, 내일 소풍을 간다고 도시락을 싸달라고 말할 어머니가 곁에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소풍을 따라갔다 오곤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되는 애들은 학교에 나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루 정도 여행을 다녀올 형편이 되는 애들은 돈을 걷어 선생님이 속리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도 갈 수 없는 애들 몇은 남아서 정구장 롤러로 선생님들이 정구를 치는 정구장 바닥 다지는 일을 했습니다. 진종일 커다란 시멘트로 된 롤러를 끌면서 정구장을 밀고 나니, 선생님은 다시 운동장가에 심어져 있는 나무의 송충이 잡는 일을 시켰습니다. 친구들이 여행을 떠난 텅 빈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넣던 일은 상처가 되어 오래 남아 있습니다.” (p.31)

시인은 아버지, 어머니를 1년에 두 번, 방학 때나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는 편지를 썼다.

“어떤 때는 눈물을 질금거리며 ‘부모님전 상서’를 썼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계절 인사 몇 줄을 쓰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세심히 살폈고, 비가 오는지, 무슨 꽃이 피는지, 별이 어떻게 떴는지를 살피곤 했습니다. 그렇게 주위의 정경에 관심을 갖는 것이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편지를 받으면 아버지는 답장을 보내주시곤 했는데, 편지는 올 때마다 주소가 바뀌었습니다. 편지 봉투에 쓰여 있는 주소를 들고 방학 때면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외롭다는 생각, 혼자 있다는 생각, 가난 때문에 받았던 상처가 나를 글 쓰는 사람이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p.31)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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