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밖에서 다시 살아난 한민족 장인들
역사 밖에서 다시 살아난 한민족 장인들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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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목수출신, 독학으로 문학공부를 한 뒤 83년 신춘문예 당선, 책 `나는 조선의 국모다` `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등 출간...

소설가 이수광의 이력이다. 제천 출신으로 52세인 이수광은 17살 때 상경해 공장에서 일하다가 목수 일을 배워 10년의 경력을 쌓는다. 당시 일류 요정과 사찰들의 한옥문을 직접 짰고 한옥창호기술자로 실력자가 됐다.

`명인열전 : 혼을 불사른 사람들`(2005, 시아출판사)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장인들과 예인들의 삶이자 바로 이수광 자신의 이야기다.

그는 잊혀진 명인들을 찾고자 삼국사기와 이향건문록, 용재총화와 같은 자료들을 섭렵했지만 생각만큼 관련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많이 찾지 못했다. 출신이 불분명하거나 혹은 천출이라는 이유때문에 역사에 이렇다 할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인물들이 장승업, 김정호, 이명래, 최무선, 담징, 아사달 정도다.

화가 장승업은 평생을 술과 기생 그리고 그림 속에 파묻혀 보냈다.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라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주인 아들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처음에는 남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모화부터 출발해 기생들의 미인도를 그리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대한 양반들의 조롱에 영향을 받아 진정 혼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으며 기완(器玩), 산수, 인물, 절지(折枝) 등의 작품들을 남겼다.

글 하나 모르는 까막눈 이동은 의원 너머로 의술을 배우다가 누구나 반상의 구별없이 몸이 불편한 사람은 의원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 스스로 종기치료 등의 의술을 공부했다. 그는 약 재료로 대소변과 머리카락, 손톱을 사용했으며 훗날 정도대왕의 치질을 치료해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고약하면 떠오르는 이가 바로 이명래다. 1890년 한양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위생관념이 부족했던 사람들이 종기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종기치료제 개발에 몰두했으며 한방의서의 비법과 프랑스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른바 `이명래 고약`을 만들기에 이른다.

일제 총독부 위생과의 간섭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의원으로서의 삶을 살다 1952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개발한 고약은 둘째사위가 이어받았다.

조선 영조 때의 기생 가련은 정인 이광덕을 위해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암기한 예인이자 가인이었다. 암행어사라는 신분으로 가련이 살고 있는 함흥 땅을 밟게 된 이광덕은 어린 기생 가련이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린 것을 보고 그녀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간다.

이광덕은 가련에게 훗날 다시 만나면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외워달라고 요청했고 가련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들린 듯 출사표를 외운다. 10여년이 지난 후 조정의 탄핵을 받은 이광덕은 함흥을 귀양을 가게 되었고 그 때 가련이 이광덕 앞에 나타나 `출사표`를 단 한글자도 안 틀리고 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작가는 조선 시대의 기생을 흔히 창녀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의 기생들은 시인이자 가인이었으며 예인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밖에 책은 산과 길을 따라 보낸 지리학자 김정호, 황룡사 9층 목탑을 완성한 아비지, 당상관의 벼슬에 오른 전통의 한옥 장인 이가응손, 조선시대 최고의 명검을 만든 야장 신아 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그림 = 오원 장승업의 그림과 추사 김정희의 글)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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