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원작자 박인권 “우리 모두 빌리는 인생”
‘쩐의 전쟁’ 원작자 박인권 “우리 모두 빌리는 인생”
  • 북데일리
  • 승인 2007.05.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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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쩐의 전쟁> 원작자 박인권 화백

“대부분이 돈을 만들면서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빌리면서 살죠. 그 처절한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북데일리]방송 2회 만에 시청률 23%를 기록한 화제의 드라마 SBS ‘쩐의 전쟁’. 그 ‘걸출한’ 스토리를 탄생시킨 원작자 박인권(53) 화백을 18일 구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쩐의 전쟁’은 스포츠 칸에 연재 중인 만화로 단행본 <쩐의 전쟁>(삼양출판사. 2004)으로도 출간 된 인기작이다.

박화백은 철저한 자기관리, 체험주의자로 소문난 34년차 베테랑이다. ‘쩐의 전쟁’ 역시 6개월 이상 직접 사채업 전주(錢主)역할을 체험 한 후 완성한 작품이다. “싸구려 사채업자는 서류에 연연하지만 유능한 사채업자는 오직 인간심사만 한다” 등의 생생한 대사는 모두 이러한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남이 쓴 것에는 흥미 못느껴”

박 화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절박함’ 속에서 나온 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다 보니 밝은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제비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물’, 사채업을 등장시킨 ‘쩐의 전쟁’ 등 박화백의 작품 중에는 이처럼 사회성 짙은 소재, 무거운 주제가 많다.

이에 대해 박 화백은 “나쁘다고 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음성화될 수밖에 없다”며 “어둠을 보여줘야 밝음의 고마움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보여줌으로써 위험성과 폐해를 일깨우자는 것’은 그의 작품 철학이다.

‘쩐의 전쟁’ 역시 극한 상황에 놓인 ‘금나라(박신양)’라는 인물을 통해 사채의 위험과 실종되어 가는 휴머니즘을 성토 한 작품이다.

“안방극장용으로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소재”라는 박화백의 말처럼 ‘쩐의 전쟁’은 그간 공중파 TV드라마가 좇아 온 식상한 소재에서 벗어나 ‘사채업’이라는 음지를 여과 없이 통과 하고 있다.

드라마 전개 역시 남다르다. 1회에서 주인공의 부모가 모두 죽음을 맞는가 하면 2회에서는 펀드매니저였던 금나라가 구걸하는 모습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인간이 겪을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의 순간을 2회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모두’ 보여준 것이다.

박화백은 “남이 썼던 소재는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익숙한 소재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에너지 자체가 창출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것. 지독한 체험의 과정이 필요한 것. 최초의 영역인 것에 ‘발동’이 걸린다는 그다.

“박신양, 연기력이 풍부한 배우”

‘쩐의 전쟁’은 박화백의 작품 중 최초로 극화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박화백은 방송을 본 소감에 대해 “조금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금나라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돌탑을 부수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박화백은 “주인공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꼭 필요 했던 장면인데 이를 특정종교 비하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실제로 방송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우려해 “본 드라마의 특정종교와 관련된 장면은 드라마의 극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특정 종교를 왜곡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낸 바 있다.

방송을 “시집보낸 딸 보듯 지켜보겠다”고 밝힌 박화백은 박신양의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화백은 박신양을 일컬어 “연기력이 매우 풍부한 배우”라고 말했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인물 금나라는 친형, 친오빠 혹은 애인의 느낌이 나는 친근한 느낌이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박신양의 캐스팅은 매우 적절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최초가 최고”라는 모토로 지난한 무명 생활을 견뎌 온 박화백. 1973년에 입문했으니 올해로 만화경력 24년째다. 입문 동기인 이현세가 이름을 알릴 때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만화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피나는 각오가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고통의 시절었다. 유난히 무명시간이 길었던 이유에 대해 작가는 ‘오만함’을 들었다.

박화백의 사회성 짙은 소재는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숫한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때마다 그는 “내 작품은 왜 이렇게 저평가 당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화백은 당시를 돌아보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오만했던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한때 박화백은 “좋은 작품을 쓸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무인도에 들어가 몇 년을 지내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 “오늘” 좋았기 때문에 포기 할 수 없었던 것. 바로 그것이 만화였다.

박화백은 “영원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하면 영원히 할 수 없다. 오늘, 지금 제일 좋아하는 것이 영원히 좋아하는 것이다. 딱 하루면 좋으면, 영원히 좋은 것이다. 지금 좋아하는 것 오늘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독서, 최고의 두뇌 비타민”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고 부르는 박화백. 그는 자신을 지탱해 준 최고의 은인을 ‘책’으로 꼽는다. 박화백의 독서량은 정평이 나있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그의 독서열을 증명했다. 작업실에 있는 책은 그가 가진 책의 일부일 뿐이다. “제발 책 좀 어떻게 하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릴 만큼 그의 집은 책으로 넘쳐 난다고.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절정의 글을 쓸 수 없다”는 그에게 취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독서다. 어린 시절 “베고 자기라도 하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으로 인해 박화백은 늘 책 가까이서 자랐다. 도스토예프스키,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등 필독서로 꼽히는 고전에서부터 만화, 각종 소설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으며 꿀 같은 독서의 단 맛을 깨우쳤다.

박화백은 책을 일컬어 ‘두뇌 비타민’이라는 표현을 쓴다. 몸의 건강을 위해 약을 먹고 좋은 음식을 먹듯 뇌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비타민이 부족하면 몸에 이상이 오는 것처럼 뇌의 비타민인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죠. 생각을 건조하게 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뇌에 생명을 주자는 거죠”

평소에 뇌 비타민 관리를 잘하면 극한 상황에 처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박화백의 지론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생각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먹구름 속에서도 빛을 찾는 다는 것. 박화백은 “책은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줄 뿐 더러 수많은 벤치마킹을 가능하게 한다”며 독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화백의 기상 시간은 새벽5시다. 4시에 일어날 때도 있다.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당신 잠자는 것 보는 게 내 소원”이라고 아내가 말할 정도다. 3군데 신문 연재를 맡고 있는 그의 일상은 늘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새벽 5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쩐의 전쟁’을 집필 한 후 작업실로 출근한다. 이 후에는 ‘대물’만 집필 한다.

매일 피 마르는 마감시간과 싸워야 하는 그에게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술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무명 시절이 길었던 만큼 내성이 강한 그이기에 이 같은 생활에 불편함은 느끼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이 행복하다는 그다. “지금,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다는 박화백. 여전히 만화는 그의 최대 관심사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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