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리움이 빼앗긴 산과 들 찾았구나
저 그리움이 빼앗긴 산과 들 찾았구나
  • 북데일리
  • 승인 2005.09.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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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는 우리나라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오르면서 쓴 아름다운 시편들로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다. 창비에서 나온 시집으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지리산`(2001), 야간산행(1996), 전야(1981), 백제행(1977) 등이 있다.

시인을 만난 것은 봄비가 진달래꽃잎을 촉촉이 적시는 어느 봄날, 남원의 가재마을이다.

시인은 연작시 ‘지리산’을 마치고 백두대간을 향하여 신발끈을 고쳐 메고 있을 즈음이다. 산처럼 푸근한 인상의 시인은 마을 소나무 아래서 잠시 다리쉬임을 하고는 지리산 긴 몸뚱어리를 뒤로 남기고 대간 길에 오른다.

시인이 먼저 찾은 곳은 함양 백운산 골짜기다. 온 산 가득한 소리의 뿌리를 더듬듯 시인은 산속으로만 빨려 들어간다. 아마 이곳이 풀물이 옷에 배이듯 산소리의 풋내가 배어있는 곳이리라. 쑥대머리를 흥얼거리는 시인의 어깨가 물결진다.

내려가는 길에 시인은 풀섶에 버려진 나무 지팡이를 주워든다. ‘죽은 나무마저 땅과 사람을 잇는구나’하는 시인의 볼이 불그레하게 물들어 온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장수군 장계면에 있는 ‘오동제’라는 호수다. 시인은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주논개 태어났던 마을 물에 잠겨/오늘은 검푸는 오동제 호수로 출렁인다/새로 복원된 생가 마루에 앉아/바라다보이는 깃대봉 높은 등줄기/눈 덮인 대간 마루금/내 온몸을 벅차오르게 한다/전라도 장수에서 태어나 경상도 함양에 묻힌/스무살 한 떨기 가녀린 목숨/그녀 무덤 찾아가는 발길에 눈만 내리 쌓이고/육십령에서는 자동차들도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진주성 빼앗기고 돌아가던 패전 의병들/이 고개에 올라 잠시 숨 고르며/그녀가 묻힌 저 산자락 돌아보았을 게다/방지마을 앞쪽 산줄기 양 날개 사이로/뻗어내린 산 매듭을 지어 머문 언덕/위아래로 자리잡은 무덤 두 기/아 지아비와 지어미의 하늘 바라보기/사백 수십년 세월 자라나서 산이 되었구나/대간에서 나고 대간에 묻혔으니/내가 가는 길도/그녀 매서운 눈보라 맞으러 가는 길이다” (‘논개를 찾아서’)

새벽 금남호남정맥이 갈라지는 영취산에 올라 시인은 남도의 고향 가는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을 오롯하게 바라본다. 산을 배우면서부터 시인은 서럽고 외로운 이들의 슬픔과 고독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좋게 잠들어 있음을 보았다 한다.

“나는 본디 내 이름이 무엇인지/아비 어미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누구든 아무렇게나 이놈 저놈/되풀이 나를 부르다가 어느덧 바우가 되었다/가세 가세 나무 가세/깊은 산에 나무 가세/우드락 뚝딱 나무 가세/지게 지고 올라와 삭정이 긁으면서/흥얼흥얼 뱉어내는 노래/내려와서는 장작 패고 쌓아두고/불때거나 논에 물꼬 잡으러 나가거나/이 세상 내 이름 따라다니는 나의 일이었다/난리가 났다고 했다/어르신네 말씀 좇아 온 동네 동무들 불러모았다/글 읽는 도령들도 왔다 우리는/횃불 켜들고 육십령으로 몰려가서/밤새워 숨죽이며 왜놈들을 기다렸다/어르신 고함 소리 새벽 하늘을 찌르고/우리들은 함성을 지르며 내달렸다/나무하던 낫으로 저들을 찍고 또 찍어/나도 쓰러져서 이 산에 보태는 흙이 되었다/이 고개를 넘어/내 본디 이름이 있는 다른 세상으로 나도 갔다” (‘옛적에 죽은 의병이 오늘 나에게 말한다’)

덕유산과 백운산을 잇는 육십령 고갯마루 언저리 밥집에 앉아 된장찌개에 막걸릿잔을 기울인다. 남원군 운봉에서 태어나 이곳 백운산에서 소리공부를 한 명창 송흥록. 그가 한번 소리를 지르면 바람 일어 촛불들 한꺼번에 꺼져버렸다 하니 웅담한 그 소리 듣고 싶어져 동편제처럼 걸죽한 막걸리에 자꾸 손이 간다.

육십령에서 덕유산으로 가는 길목, 할미봉에 오르니 숨이 차다. 남덕유에 올라 보니 저 멀리 지리산 능선이 바다위에 뜬 섬 같다. 시인은 오르내린 고빗길이 흰구름 속에 묻혀 사라지는 바람소리 같은 것이라며 발길을 돌린다. 무룡산을 지나 백암봉에 이르니 이제 백두대간 마루금이 덕유산 향적봉을 거치지 않고 예서 동진한다.

덕유삼봉 마애삼두불을 지나 민두름산에 이르니 충북 영동땅이다. 여시골산 눌의산 황악산을 지나 궤방령에 이르러 풀섶에서 비를 맞으며 밥을 먹는다. 시인은 비에 젖어 절뚝거리는 젊은 한시절을 회상하듯 상념에 잠긴다. 추풍령에 내려서니 널찍한 당마루가 산도 쉬고 사람도 따라 쉬어가게 한다. 여기서 상주땅이 멀지 않으니 역사는 참으로 역설인가. 친일파 위암 장지연의 고향 상주에 구한말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운구가 지나간다.

“왜놈 땅에서 나오는 물 한모금 쌀 한톨 입에 넣지 않았다는 사람 왜놈 흙 밟을 수 없다며 조선 땅 흙 뿌려 밟고 갔다는 사람 그렇게 대마도에서 죽은 몸이 바다 건너 고국으로 돌아왔다 길가에 늘어선 백성들 운구를 가로막고 울부짖었다 산천초목도 떨면서 제 몸들을 짜내 아픈 비를 뿌렸다 상여는 하루 십리도 나아갈 수 없었다 상주 백성들이 더욱 두려운 왜경들은 널을 기차에 태우고 도망치듯 이 고을을 떠났다 낮은 산들이 높은 산들보다 더 힘차게 뻗어갔다 한 사람 죽은 몸뚱어리 가는 길 온나라의 슬픔이 다독거렸다” (‘면암선생 운구가 기차에 실려 갔다’중에서)

‘저 많은 그리움들 발돋움을 해서 이토록 가멸찬 산과 넓은 들 만들었구나’. 보은으로 가는 신의티 고개를 넘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인의 가슴에 가을비 추적추적 쌓인다.

(사진 = 이성부, 창비 제공)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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