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개의 도시에 대한 신기한 묘사
55개의 도시에 대한 신기한 묘사
  • 북데일리
  • 승인 2007.05.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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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제 위시리스트에는 절판된 책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언제 재출간 될지 모르지만, 일단 담겨 있으면 책과 저 사이에 최소한의 끈이라도 드리워 놓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거든요. 기억하는 데는 한계가 많은 지라, 한 번 잊으면 잊혀진 책이 되어 어떤 계기가 아니고서는 다시 찾게 될 확률이 희박하니까요. 사실,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취미 가운데 빈도수가 높은 일이 온라인 헌책방에 들어가 혹시나 하며 여러 책들의 제목을 두들겨보는 일인데요. 오프라인에서도 헌책방에 수시로 들르긴 하지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절판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면 꼭 다른 책들의 자태에 매료되어 그 책들을 공수해 오기도 바쁩니다.

작년엔가 닉 밴톡의 소설들을 꽤 구하고 싶어 했는데, 한 지인이 2006 국제도서전 김영사 부스에서 다른 책을 구입하자 <그리핀&사비네>(김영사. 1993)를 덤으로 얹어주어 받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니, 팔지는 않으면서 덤이라니! 부러웠습니다. 입맛을 다시며 김영사에 전화를 걸어볼까도 했지만, 다른 중요한 일들에 차례가 밀려 미수에 그치고 말았네요. 그래도 제게는 아직 출판사에 전화를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가 남아 있습니다.

절판된 책 찾아 삼만 리, 해 보셨어요? 찾아 헤매는 일은 참 힘들지만, 찾아낸 순간만큼은 “해냈다!”는 생각에 절로 입이 벌어지며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알폰스 쉬바이게르트의 <책>(책. 1991. 품절)이나, 이탈로 칼비노의 <코스미코미케>(열린책들. 1994. 품절)를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죠. (다행히 <코스미코미케>는 작년에 Mr. Know 세계문학 중 하나로 열린책들에서 <우주만화>(열린책들. 2006)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있으니 읽어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온라인 서점에서 필요한 책들을 몇 권 골랐습니다. 고르고 나서 한 권씩 사 모으는 재미에 세계 문학 전집을 한 권 고르려고 여느 때처럼 검색어로 입력했는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세상에!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민음사. 2007)이 소리 소문 없이 세계 문학 전집 중의 하나로 재출간되어 나와 있더군요. 주문해놓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책이 도착할 때까지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 먹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앞에 놓아드릴 소설은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탈로 칼비노의 후기 대표작으로 예술 그 자체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민음사. 2007)입니다. 개인적으로 세 거장의 소설 중, 칼비노의 소설을 가장 좋아합니다. 읽어 본 칼비노의 소설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인데요. 감탄을 넘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던 책입니다.

보르헤스나 마르케스를 언급하니, 눈이 동그래지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이탈리아 작가인 칼비노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보르헤스나 마르케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1997년에 나왔던 대단한 ‘이탈로 칼비노 선집’도 <나무 위의 남작>(민음사. 2004)만 세계 문학 전집 중 한 권으로 다시 나왔을 뿐, 아직 <반쪼가리 자작>(민음사. 1997)과 <존재하지 않는 기사>(민음사. 1997)는 품절인 채니까요.

이탈로 칼비노는 보르헤스와 동시대를 산 인물입니다. 딱 한 번 둘은 만났다고도 해요. 칼비노는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이탈리아 작가들이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합니다.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를 극히 적은 페이지에 밀집시키는 보르헤스의 능력에 존경을 표했다고도 하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고 환상에 기대어 현실을 보여주고, 단편을 좋아하며 실제로 단편쓰기를 즐겨한 점까지 칼비노는 보르헤스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닮아만 있다면, 사람들이 3대 거장으로 손꼽아 줄 이유가 없겠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상징과 기호가 두드러지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9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총 55개의 도시를 묘사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와 여행자인 마르코 폴로의 도시에 대한 가상의 대화가 이어질 도시에 대한 안내문 역할을 합니다.

1부와 9부에는 각각 열 개의 도시가, 2부부터 8부까지에는 각각 다섯 개의 도시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각 부는 ‘도시와 기억’, ‘도시와 욕망’, ‘도시와 교환’, ‘도시와 기호’, ‘도시와 이름’, ‘도시와 눈’, ‘도시와 하늘’, ‘도시와 죽은 자들’, ‘섬세한 도시’, ‘지속되는 도시’, ‘숨겨진 도시’라는 이름하에 각각의 도시들은 큰 카테고리 안에서 닮은 듯 다르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한 도시 한 도시를 접할 때마다 큰 카테고리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읽으셔야 이해가 온전합니다. 도시들에 대한 유려한 묘사들은 두 세 페이지 정도로 상당히 짤막합니다. 어떤 부분은 시를 읽는 듯 느껴지기도 해 읊조리며 읽기도 했습니다. 언어로 쓰여 있지만 도시들은 이미지로 화하여 머리보다는 마음에 우선 와 닿습니다.

도시들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므로 사건도 없고, 서사도 없으며, 그렇다 할 인물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각각의 도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커다란 도시 전체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되고, 어느 순간 그 도시의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등장인물로서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진귀한 독서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다른 어떤 작품에서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칼비노는 이 소설을 조금씩 나눠가며 집필했으며, 이 소설 안에는 칼비노가 기분에 따라 생각했던 도시의 여러 모습들을 일기처럼 고스란히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소설 안에는 칼비노도 등장하고, 또 저도 여러분도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평소에 `소설‘의 일반적 틀에 갇혀 있었던 분이나 환상 문학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 있으므로 칼비노가 만든 도시들의 형상이 잘 떠오르지 않으실 수 있을 겁니다. 쉽게 먹을 수 없는 소설이니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마시고 집중하여 책을 보시되 ‘언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마시고, 그저 보시는 것이 이 책에 어울리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자, 준비하시고~보세요! 읽지 말고, 보세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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