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의 세계 ① 미스터 초밥왕
리액션의 세계 ① 미스터 초밥왕
  • 북데일리
  • 승인 2007.04.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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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주성치의 영화 <식신>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음모로 인해 빼앗긴 식신(食神)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소림사에서 18나한에게 엄청나게 맞아가면서 수련을 한 주성치가 식신대회에서 `암연소혼반`을 만들어내고, 절대미각을 지닌 심사위원 아줌마가 이 암연소혼반을 먹고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결국 쓰러져서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주성치 특유의 키치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이 장면은 사실 주성치만의 발상이 아닙니다. 바로 만화 속에서 완성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오버액션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입니다.

음식 만화는 타 장르와 차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이란 같은 재료라도 조리법에 따라 수백 가지의 음식이 나온다고 할 만큼 소재의 폭이 넓고 다양합니다.

일본 만화만 놓고 살펴보아도 <미스터 초밥왕>처럼 한 가지 음식을 깊게 파고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맛의 달인>처럼 특정한 음식을 정하지 않고 모든 음식을 폭넓게 다루는 작품도 있고, 중화요리나, 일식, 양식등 특정 분야를 통털어 보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도 요리사끼리 대결을 하는 대결구도와, 추억의 맛을 찾아서 재구성하는 에피소드형으로 또한 나뉩니다.

하지만 음식 만화가 지닌 큰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음식을 그림으로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은 흔히 코로 먹고 눈으로 먹고 마지막으로 입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물론 음식의 모양과 향기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그 음식을 직접 먹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화는 이 세 가지를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림이 주된 표현수단이지만, 이는 직접 완성된 음식의 사진을 보는 것보다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향기와 맛은 느낄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리액션` 이라고 불리는 음식 만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입니다.

완성된 음식을 먹은 등장인물들은 간단하게 `맛있다는 표현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어떠한 맛을 느꼈는지, 그리고 이 음식을 먹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정말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는 특이한 행동들을 합니다.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미스터 초밥왕>에서 관동대회 심사위원으로 나온 야스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경우 자신도 모르게 크게 박수를 쳐버리는 것이나, 전국대회의 심사위원인 이와사키옹이 감은 눈을 크게 떠버린다거나 하는 것은 무의식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보여주는 리액션인 것입니다.

이처럼 리액션은 독자에게 이 음식이 어떻다를 설명해주는 것이 역할의 전부가 아닙니다. 음식 만화에서 요리사간의 대결 구도는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이런 빈번한 대결이 작품을 식상하게 만들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때 리액션이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승부의 양상은 비슷비슷하더라도, 음식을 먹은 심사위원이나 사람들의 리액션을 조금씩 달리하거나 그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여준다면, 독자는 이번 대결이 앞선 대결과 다르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점차적으로 레벨이 올라간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미스터 초밥왕>을 다시 예로 들자면, 관동대회의 결승전에서 심사위원인 야스는 초반에는 네 명의 작품 가운데 한 명에게만 박수를 쳐주며 박수 자체로 승부의 결과를 짐작케 만듭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박수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박수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늘어나는 박수의 횟수로 인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승부의 레벨이 엄청난 경지에 다다른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음식 만화에서 리액션이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리액션은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이 한계에 부닥친 음식 만화가 새로이 찾아낸 돌파구입니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리액션을 통해 단순히 보이는 부분을 넘어서 스스로 그 음식에 대해 상상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음식 만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군침이 돌고 맙니다. 특히 늦은 밤에 보는 음식 만화는 독약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리액션의 힘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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