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주머니 속에 ‘괴물’이 있어요
엄마, 내 주머니 속에 ‘괴물’이 있어요
  • 북데일리
  • 승인 2007.04.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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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화, 짜증, 질투, 슬픔... 누구나 한번쯤 휩싸일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아이들이라고 해 예외는 아니다. 옆집 아이와 비교에 자존심 상하고, 반복되는 잔소리에 짜증이 솟구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나쁜 감정’이라며 드러내지 않도록 강요하곤 한다. 속마음을 숨기는 아이에겐 도리어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건넨다.

이런 권위적인 태도는 아이들을 상처 입히기 쉽다. 정작 해야 할 말조차 하지 않거나, 게임이나 오락으로 도피하거나, 스트레스를 폭력적인 행동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등 소통에 미숙한 아이로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 주머니 속의 괴물>(푸른숲. 2007)은 의사 표현이 서투른 탓에 상처 받는 아이들을 위로하는 책. 작가는 억눌린 감정의 해방구로 ‘괴물’을 등장시켜 아이들의 욕구를 통쾌하게 풀어준다.

주인공 이네스는 땅꼬마에 삐쩍 마른데다 머리는 사방으로 뻗쳐 있는 11살짜리 여자 아이다. 재미없고,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멋지고,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소심하면서도 꿈 많은 아이.

그런 이네스에게 꿈꿔 왔던 일이 벌어진다. 생각만 해도 진저리 처지는 샛노란 폴라티를 입어야 했고, 귓구멍을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은 친구 베로니카의 잘난 체에 시달려야 했던 그 날에.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볼 작정으로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모서리부터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었다. 털 뭉치가 주머니 속에서 거칠게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숨도 조금 몰아쉬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털 뭉치에 손가락을 갖다 댔는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다. 별안간 털 뭉치가 양쪽으로 쩍 벌어지더니, 바늘같이 날카로운 이빨을 두 줄 드러내고는 나를 확 깨물었다.”

이네스의 주머니에 자리 잡은 괴물은 아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대신 해 주기 시작한다. 샛노란 폴라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얄미워서 한 대 콕 쥐어 받고 싶었던 베로니카의 발목을 물어뜯는다.

처음에는 짜릿했지만 이도 잠시, 이네스는 괴물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괴물을 떼어놓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지만 번번이 실패. 결국 아이는 괴물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즉 괴물을 ‘또 하나의 나’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나쁜 감정’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님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내 주머니 속의 괴물>은 아이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혼란과 고통을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로 그려낸다. 주인공 이네스처럼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라면 특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서희선 기자 samecor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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