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치는 이유? 살아남기 위한 영역표시!
사고 치는 이유? 살아남기 위한 영역표시!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6.25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녀의 일기장>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직녀의 일기장>(나무옆의자.2015)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열여덟 살 소녀 직녀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짱이지만 집에서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주인공은 이팔청춘 유쾌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캐릭터다. 일기장에 담긴 직녀 나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문제아와 왕따는 한 장 차이다. 문제아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혹은 곧잘 마주하게 되는 기싸움을 버텨 내지 못하면 곧장 왕따의 자리로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왕따들보다도 심하게, 평소 쌓여 있던 아이들의 복수심까지 가중되어 처절한 따돌림 생활을 버텨 내야 한다. 내가 계속 사고를 치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영역 표시의 의미랄까." -37쪽

물론 이런 자조적인 논리가 문제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은근하게 공감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 닮아 있어서일까.

문제아가 소설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자칫 문제아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오류를 범할 법도 하다. 하지만 직녀의 문제행동을 감추지도 편을 들지도 않는다. 직녀는 문제아답게 수원에 있는 친구의 쪽방으로 가출하기도 하고, 코 성형을 위해 집 근처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등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그렇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직녀도 불의 앞에서 때론 정의로운 10대 청소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르바이트하는 피자가게에서 목격한 성추행 현장만 보더라도 직녀는 분명 정의롭다. 함께 일하는 친구가 매니저에게 성추행당하고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들고 있던 볼펜으로 매니저의 엉덩이에 똥침을 놓는다. 장난이라며 상큼한 미소를 띄워주며. 직녀다운 응징이다. 이 일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했지만 직녀라는 캐릭터에 도덕적 면모를 부여하는 장면 중 하나다.

책은 성장소설이지만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도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가독성을 부여하는 데는 주변부 인물의 역할도 크다. 주인공의 절친 연주와 민정이는 직녀 못지않게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다. 모델지망생 연주는 직녀와 붙어 다니며 철없고 눈치 없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놀면서 공부도 놓치지 않는 모범생 민정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철학적이다.

"적당히 거리를 둔 평행 관계가 좋은 거야. 두 개의 선이 어느 점에서 만나 버리고 나면, 그 뒤로 남는 건 멀어지는 일밖에 없어." -27쪽

"왜 자기 마음을 아는 게 더 어려울까? 내 생각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거 같아. 사람이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야. 그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해도. 때문에 나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오만을 품기에 앞서서,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03쪽

각자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는 등장인물들과 문제아지만 무언가 순진한 구석이 있는 주인공 직녀의 좌충우돌 성장기.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이 무색하지 않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