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농사에 크라우드펀드 투자 이유는?
돈 안되는 농사에 크라우드펀드 투자 이유는?
  • 김은성 기자
  • 승인 2015.06.1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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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소비자 이어주는 사랑방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화이트페이퍼=김은성 기자]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쪽박만 찰 것이라고 혀를 찼다. 유사한 사업모델도 없었다. 박종범(사진·35) 대표가 농사펀드(farmingfund.co.kr)를 만든다고 하자 모두 말렸다. 농사펀드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소비자가 농부에게 투자한 뒤 건강한 먹거리로 되돌려 받는 새로운 펀드.

하지만 농사펀드는 투자 리스크가 크다. 기후변화에 따른 큰 변수가 커 소위 말하는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농사펀드는 시간적으로도 손해다. 농사펀드에 투자해 생산한 농산물을 받으려면 최소 두 달 이상 걸린다. 동네 마트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농산물에 비하면 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모두가 창업을 반대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와 달리 지난해 12월 문을 연 농사펀드는 순항중이다. 현재 47명의 농부가 ‘농사 펀드 매니저’로 참여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하루 평균 2명의 농부가 펀드가입을 요청한다. 인력이 부족해 농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은 950명. 그 중 450명이 투자자다. 농사펀드는 사회 연대 은행과 엔젤투자자 지원을 받아 3명의 직원에게 월급도 준다.

"소비자들은 먹거리 안전에 대한 욕구를 채우며 펀드로 사회적 투자에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상품 판로가 생겨 만족해 하고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소비자와 농민이 상생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낸 것 같아요." 박 대표가 전한 농사펀드의 순항 비결이다.

그는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문으로 사이트의 온기를 꼽았다. 농부는 2주에 한번 농사 과정과 일상을 사이트에 올린다. 소비자는 투자한 상품의 생산 과정을 지켜보며 댓글을 단다.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홍수, 가뭄, 산짐승) 위험도 함께 나눈다. 효율과 결과만 따지는 계약재배와 달리 농사펀드는 농부의 철학에 투자한다. 투자자를 믿고 농부는 생산량과 판매 걱정 없이 친환경 농사에만 전념한다.

농사펀드에 참여한 농부의 인터뷰가 언론에 나가자 한 투자자는 “우리 농부님이 언론에 나왔다”며 사이트에 인증샷을 달았다. 또 다른 투자자는 “밥을 먹을 때 마다 농사짓는 마을 풍경이 떠올라 더 맛있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런 소통을 보며 가장 신이 난 건 박 대표다. 그는 “일반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볼 수 없는 공동체의 온기가 농부와 도시 사람들 사이에 싹트고 있다”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신뢰로 만들어 지는 과정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농사펀드 대표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박 대표는 학창 시절 방학 때마다 외할아버지 댁에 내려가 벼농사를 거들었다. 농사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 사는 법을 배웠다. 이어 대학시절 농촌 민박 소개 일을 하며 농촌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관심은 직업이 됐다. 농촌 정보화마을 운영사업단 기획자에 이어 농산물 전자상거래업체 마케터로 일했다. 농촌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농 문제가 눈에 밟혔다.

농산물 유통에 크라우드펀딩을 접목하면 농촌과 도시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펀드의 시작이었다. 실제 운영해 보니 가격에서도 소비자에게 이득이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농산물 가격에는 45%가 중간 유통비로 떼인다. 농사펀드는 직거래 구조로 유통마진 45%를 농부와 소비자가 나눠갖는다. 그는 “소비자는 시장보다 평균 20% 정도 저렴하게 먹거리를 구할 수 있다”며 “소농은 싼 값에 상품을 만들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써가며 유전자변형식품 등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농사펀드가 입소문이 나면서 경기도와 충청도가 공동 사업을 제안했다. 박 대표는 전국에 흩어진 정직한 농부를 발굴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을 구상중이다. 연말에는 쇼핑몰 ‘리워드숍’을 열어 새로운 판로도 개척할 예정이다.

"도시 사람과 농부가 서로 교류하며 이해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됐으면 해요. 갑과 을의 계약 관계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잘 살기 위해 협력하는 공동체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박 대표가 꿈꾸는 농사펀드의 미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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