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그리움... 아릿한 소설
상실과 그리움... 아릿한 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6.11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정임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함정임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문학동네.2015)는 아린 맛으로 남는 소설집이다. 단편집 전반에 드리운 상실과 부재와 그리움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를 언급하지 않은 채 추모하는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뿐 아니라 양부모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주인공이 연인과 이별 후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엔 죽음이 언급된다. 나머지 단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결혼식 사흘 전에 사라진 약혼자가 십 년 뒤 남긴 유품의 수첩에 적힌 프랑스 호텔을 여행하며 그와 온전히 이별하는 나미의 여정「어떤 여름」, 결혼과 동시에 멕시코로 떠난 U와의 만남을 통해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꽃 핀 언덕」등 소설엔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함정임은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러니 계획된 일상을 뒤로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거나 히말라야로 향하는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 불편하기는커녕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불안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끌린다. 「어떤 여름」에서 나미와 충동적으로 동행하는 장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모험보다는 모험 이후의 어떤 흐름, 인생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의 모든 것.’ (「어떤 여름」, 98쪽)

 그러나 여전히 이별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것은 「구두의 기원」속 이명을 앓고 삶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힘겨운 소설가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일요일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소설가의 독백처럼 말이다.

‘늙은 엄마에게 손자처럼 자란 너는 늙어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순리를 비교적 일찍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치를 비교적 늦게까지 깨닫지 못했다.’ (「구두의 기원」, 134쪽)

그러니 예전 편집자 J를 찾아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심정을 함부로 탓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구두 한 짝은 상실을 채우는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구두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반대로 매일 마주했던 구두가 사라지면서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엄정한 사실에서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삶의 단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구두가 아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나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계에 걸쳐 서 있었다. 경쾌한 소리, 투박한 소리, 엉기는 소리, 육중한 소리. 그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소음은 걷는 것, 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밤의 관조」, 168쪽)

반복되는 유산으로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견뎌야 하는 「밤의 관조」속 화자와 「구두의 기원」의 소설가는 독자의 가슴에 스며드는 인물이다. 사라진 존재가 삶의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애도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