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대화하는 알바고양이 유키뽕
인간과 대화하는 알바고양이 유키뽕
  • 북데일리
  • 승인 2007.04.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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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동물이 등장하는 만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타카하시 요시히로의 <흐르는 별 실버>, <은아전설 위드>나 이가라시 미키오의 <보노보노>처럼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의인화된 동물들만이 등장하는 작품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람과 유사한 행동을 하곤합니다.

다음으로는 누노우라 츠바사의 <센타로의 일기>나 아즈마 요시오의 <아기 펭귄 텐>과 같이 애완동물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에는 주인과 애완동물 사이의 자잘한 에피소드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알바고양이 유키뽕>(랜덤하우스코리아. 연재중)은 매우 희한한 만화입니다. 애완동물로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주인은 고양이를 키우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작품의 첫 에피소드에서 술에 취해 들어온 주인은 방에 누워 곤히 자는 고양이를 깨우고는 “너가 먹을 밥은 너가 벌어먹으라” 고 명령합니다.

심지어 고양이 유키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과 대화를 합니다. 야마모토 테리의 <바우 와우>에 나오는 바우도 매우 영리하고 약삭빠른 개지만,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키뽕은 사람의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서라지만,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마치 사람처럼 해냅니다.

이 작품의 재미는 유키뽕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입니다. 유키뽕은 인력거를 끄는 일부터 공사현장에서 막노동도 하고, 술집에서 서빙도 하고, 땅도 파고, 짐도 나르고, 위험한 과학실험의 인체실험도 도맡아 합니다. 아르바이트라는 범주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고양이지만, 작품 속에서 유키뽕은 한 명의 사람과 완전히 동등한 일을 해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돈을 법니다.

이렇게 애완 고양이는 세상을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돈을 버는데, 정작 이 불쌍한 고양이를 길거리로 내몬 주인 아케미는 전혀 돈을 벌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거나, 새로 사귀는 남자친구와 노는 데 정신없습니다. 그렇다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받고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도 돈이 없으면서 남자친구만 생기면 이것저것 사주고 퍼주기에 바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돈은 모두 유키뽕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입니다.

<알바고양이 유키뽕>은 `돈`을 통해 애완동물과 주인간의 기묘한 관계 역전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애완동물 - 사실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을 평범하다고 보긴 좀 그렇지만 - 이던 유키뽕은 돈을 벌어오기 시작하면서 주인인 아케미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며 보호자 행세를 하고, 아케미는 유키뽕을 애완동물처럼 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키뽕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애완동물과 주인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동물만화에서 종종 다루어지긴 합니다. 모리무라 신의 <생각하는 개>에서는 큰 개를 기르게 되면서 그 개에게 가장의 권위를 빼앗긴 중년의 남성이 주인공이고, 야마모토 테리의 <바우 와우>의 바우는 야쿠자인 주인의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 드는 건방진 개입니다.

그러나 <알바고양이 유키뽕>은 그런 동물적 본성에 입각한 관계의 역전이 아닙니다. 동물이 돈이라는 사회적 수단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애완동물 만화가 아니라 애완인간 만화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물에게 사육되는 인간 신세라고 해도 <알바고양이 유키뽕>을 읽다보면 아케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간혹 듭니다. 혼자 살고 있으니 백수라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충실한 고양이 덕분에 먹고 사는 것도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나 리모컨 좀 들고 오라고 시켜도 그거 하나 못 물어오는 답답한 우리 집 강아지를 생각해보면, 잔심부름이 아니라 아예 일까지 해서 돈까지 벌어다주는 고양이는 정말 한없이 부러운 존재입니다. 물론 그만큼 고양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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