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 '용돈 때문에 아버지께 편지 썼다'
신달자 시인 '용돈 때문에 아버지께 편지 썼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5.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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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읽기>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책이 있을 것이다. 그것에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내 인생의 책 읽기>(나남.2009)는 작가의 사적인 에피소드를 담아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달자 시인의 책 읽기는 하숙집에서 계속되는 음악의 소음으로 벗어나기 위해 서점에 발을 내딛으면서 시작됐다. 글쓰기는 아버지와 조건부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시작되었는데 ‘일주일에 편지 한 통 보내면 용돈을 조금씩 올려준다.’는 것. 어찌 되었든 그녀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거리를 책에서 베끼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베껴 쓰기의 시작이다.

시인은 책 읽기가 사람을 만들어가는 가장 강한 영양제라 말한다. 그녀가 추천한 책은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 <예언자>, <팡세>, <부활>, <안드레센 동화집> 등이다.

작가 공선옥은 책탐에 빠져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목이 말랐다. 사방을 둘러봐도 내 주변에는 책을 가진 사람도, 책을 읽은 사람도, 책을 구해줄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나에게 책이 없고 내 주변에 책 가진 사람이 없고 책 읽은 사람이 없고 책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슬펐다. 누군가 슬퍼한다는 것은 영혼이 주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암담한 내 현실을 책이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책은 없었다. 식탐이 있는 아이들은 배가 주려 있기 때문이고 책탐이 있는 아이들은 영혼이 주려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그녀가 읽은 책은 <새농민>, <편물의 기본>, <잠업소식> 등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목록들이었지만 그 시절 밤새 자신의 소설을 썼던 경험을 말했다. 가난하고 외로운 나날들의 노동이 너무 힘겨워 불현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특히 지금도 틈만 나면 도스토엡스키의 작품을 읽는다. 인간에 대한 탐구욕을 자극하기 때문.

정호승 시인은 힘겨운 시절 가슴에 품고 있던 시를 소개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전문

그는 이 시를 가슴에 품고 젊은 시인이 해야 할 시적 사명이 무엇인지, 나아가 한 시대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 때문에 피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알았다고 말한다. 또한, 그에게 영향을 준 시인으로 서정주와 김현승 시인을 꼽았다.

하성란 작가는 아버지가 건네준 한 권의 책을 기억했다. 큰판형의 올컬러판 <세계어린이명화>. 특히 그 책에 실린 벨라스케의 <시녀들>을 수십 번도 넘게 보았다고. 어린 시절 작가의 눈을 사로잡았던 마르가리타의 모습을 작가가 된 지금 이렇게 묘사한다.

벨라스케<시녀들>

‘마르가리타의 숱 적은 금발은 햇빛을 받아 흰빛으로 반짝인다. 머리카락 오라기들이 힘없이 들떠 있다. 분홍빛의 뺨은 건강한 듯 보이지만 창백한 피부와 흰 눈자위가 공주의 허약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책에는 작가들의 책과 글쓰기에 대한 내밀한 고백과 체험이 담겼다. 삶에서 책과 독서가 왜 중요한지, 자신의 인생의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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