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길수록 허기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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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5.28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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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침이 고인다. 사진 한 장 보이지 않은데 책장을 넘길수록 허기진다. 요리와 관련된 책은 늦은 밤과 허기진 시간에 멀리해야 할 물건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푸른숲.2012)는 제목처럼 추억과 버무려진 맛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스토리가 곁들여진 음식은 더 맛깔스럽다.

그가 군대 시절 행군의 고통을 잊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먹는 상상이었다. 술안주가 그리울 때 떠올린 추억은 어머니의 이북식 손만두. 크게 피를 밀고 부추를 넉넉하게 넣은 소를 채워 넣어 삶는다. 이 만두는 찌면 맛이 덜하여 푹 삶아서 건진 후 가운데 배를 갈라 간장을 넣고 먹었다고 한다. 다음은 군 상병에게 그 맛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절로 군침이 돈다.

“일단 첫 번째 만두는 김이 빠지기 전에 간장을 쳐서 막 입에 넣어요. 식도로 쩌르르, 만두가 내려가면 그다음에 향이 납니다. 부추의 향! 고기와 당면보다 부추이지요. 요새 어머니의 만두는 예전만 못한데, 순전히 부추 맛이 달라져서 그렇다고 사실 정도죠.” -69쪽

이어 만두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등장한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토르텔리니라는 만두가 있다. 이 만두를 너무 사랑한 어느 지역 사람들이 ‘토르텔리니당’을 만들었다. 총선에도 나가 수천 표를 얻었다고.

이 밖에 요리에 관한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는데 미식가들을 설렐 대목이 즐비하다.

‘꼬막의 맛은 뭐랄까, 바다의 맛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벗어나는 무엇이 있다. 잘 삶은 꼬막은 살이 터질 듯이 팽팽한데, 도도한 살집 밖으로 한껏 부푼 막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막 속에 짜고 고소하며 감칠맛 도는 ‘액체’가 들어 있다. 바닷물과는 사뭇 다르고, 그렇다고 미더덕이나 멍게 속의 체액 같지도 않은 어떤 것이다. 그 액체는 약간의 비린 맛이 있어 혀를 휙 감고 돈다. 아릿한 맛 뒤에 천천히 저 개펄의 뒷맛을 전해준다.’

또 한겨울 바닷가 한쪽의 작은 포구에서 만난 청어. 화로에 ‘칼집을 내고 굵은 소금을 뿌려 청어를 구워내는 장면’은 부드럽고 달달한 청어의 식감을 상상하게 한다. ‘고춧가루를 넉넉히 써서 맵게 끓인 우럭탕’ 이야기는 입맛이 절로 다셔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소개하며 준치와 민어 이야기를 꺼내놓고, 성석제의 <소풍>을 통해 냉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읽은 책에서 발견한 요리와 맛탐험의 이야기가 책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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