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구덩 속에서 못 벗어나는 `그 남자의 사정`
모래구덩 속에서 못 벗어나는 `그 남자의 사정`
  • 북데일리
  • 승인 2007.04.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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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를 했다. 비가 왔다. 세차를 했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세차 안 한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아는 이가 술잔을 부딪치며 푸념조로 내뱉던 말입니다. 며칠째 하늘이 뿌옇습니다. 비가 오고나면 시야가 좀 멀개질 법도 한데 산은 희미할 뿐, 여전히 윤곽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황사가 심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예쁜 꽃마저, 봄의 정취마저 몹쓸 모래바람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문득 부아가 나 커피를 진하게 한 잔 탔습니다. 게다가, 외출했다 들어오면 입안에 느껴지는 모래를 씹는 기분이란. 모두 건강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 여러분들 앞에 놓아드릴 소설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민음사. 2001)입니다. 황사도 심한 이런 봄에, 하필 왜 이 책을 소개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굳이 옹색하나마 이유를 달아본다면, 요 며칠의 황사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 나오는 깔깔하고도 눅눅한 모래의 이미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일까요. 요 며칠 대단했다던 황사도 니키 준페이가 겪은 모래바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나봅니다. 자, 오늘 ‘테마체험, 모래 구덩이 속으로’ 어떠세요?

이미 아베 코보를 접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주변의 지인들에게 추천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아직 많아 한국에서 그의 유명세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는 소설 창작을 공부할 때, 알레고리 기법을 설명하거나 소설의 전개방식이나 대화, 사유 등을 논할 때, 빠짐없이 꼽는 소설이므로 소설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특히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지요. 뭐, 하루키의 명성을 한 번 더 빌자면, 그가 자신의 전(前)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아베 코보라고 했으니, 문득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모래의 여자>는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입니다. 작가 역시 다분히 그런 의도를 담고 소설을 쓴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관능이나 감각에만 의존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베 코보의 소설에서 감각은 전체이면서 극히 적은 일부이기도 합니다.

단지, 입 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니고, 모래가 땀에 젖어 끈적하게 뺨에 들러붙기도 하며, 모래바람의 뜨거운 열기가 콧속으로 후욱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입니다. 만일 소설의 1장을 끝내기도 전에 이런 느낌을 느끼실 수 있다면, 이미 여러분과 니키 준페이와의 동일시가 진행된 것으로 간주하셔도 좋습니다.

등장인물인 니키 준페이의 모습을 흔히 시지프스의 형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시지프스는 죽은 뒤 신들을 기만한 죄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바위는 정상에 가까워지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형별이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하죠. 니키 준페이가 떨어진 모래구멍 역시 그러합니다. 그는 켜켜이 쌓이는 모래들에 의해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매일 삽질을 해야만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사뮤엘 베케트가 떠올라 끈적하면서 끕끕하기도 하고, 모래그늘에 카프카의 그림자가 문득 비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아베 코보의 글은 긴장감이 넘치지만, 그래서 독자를 지치게도 합니다. 전개가 매우 명료하고 타당하며, 순간을 잡아매어 기호로 화(化)하는 능력이 뛰어나 읽고 있자면, 어떻게 저 순간을 저렇게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의 사유 하나하나는 정밀하고 풍부하며, 철학적 성찰과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가치나 의미, 그리고 자신의 살아온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바랜 일상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탈출하고자 곤충채집을 나섰던 남자는 막상 속했던 사회에서 벗어나 억울한 현실 속에 갇히게 되자, 부조리함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일상의 규범을 동경하며,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탈출에 실패하게 되자 어느덧 모래 구덩이의 생활에 서서히 적응하여 또 다른 일상을 반복하게 되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삽질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에 순응하는 모래 그 자체라서 더욱 요염하게 느껴지는 여자.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은 곧 바깥이기도 하며, 바깥은 또 다른 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모래바람,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의 흐름, 그 안에서의 반복.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는 저에게 <모래의 여자>가 일으켜준 모래바람은 아무래도 특별한 신호같습니다.

팬옵티콘 같은 어두운 모래 구덩이 속에서 매일을 삽질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새롭게 보고, 못다한 울음으로 빚어내는 일상이라면 하루하루가 유수장치를 발견한 기쁨처럼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더 이상 조잘거렸다가는 말의 모래 구덩이에 빠질 것 같기에 이만 총총.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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