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얼굴로 사는 사람들
두 개의 얼굴로 사는 사람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18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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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켈만의 <에프>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다니엘 켈만 소설 <에프>(민음사.2014)는 가족을 떠나 다른 가족을 만든 아버지가 큰 아들 마틴과 쌍둥이 이복동생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최면술 쇼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고 당황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시킨 후 아버지는 최면술사 린데만 말대로 자신의 삶을 찾아 사라진다. 마틴은 성직자 이반은 큐레이터가 에릭은 투자 전문가가 된다. 아버지 아르투어는 소설가가 되어 가끔씩 그들과 만난다.

 소설은 마틴, 아르투어, 에릭, 이반의 인생을 교차로 들려준다. 그러니까 하나로 연결된 네 명의 인생을 만난다. 성직자 마틴의 삶은 전혀 성직자답지 않다. 고도비만으로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초콜릿을 먹고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도 없다. 소중한 건 큐브뿐 교리와 믿음에 대한 어려운 질문엔 신비로운 것이란 답으로 무마한다.

 ‘부서지는 초콜릿, 알싸한 코코아 맛. 하지만 이제 깨닫는다. 너무 기름지고 지나치게 달다는 걸. 거의 모든 게 이러한데, 예수는 이를 간파했고 부처는 보다 신중했다. 정말 충분한 것이란 없다. 모든 건 불충분하며, 그래도 사람들은 떨쳐 내지 못한다.’ (94쪽)

 누가 봐도 성공한 사업가 에릭. 아름다운 전직 여배우 아내와 거대한 저택에서 사랑하는 딸과 살고 애인도 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잘못된 투자로 고객에게 손해를 입히고 장부 조작으로 숨기고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족에게 큰소리를 친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이반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거장의 작품을 모작한다. 언론과 매체의 힘으로 그의 그림은 진짜가 되었다. 진실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확인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반이다.

 ‘예술은 신만큼이나 드물다. 시간의 종말, 영원, 천사의 무리 만큼이나. 작품만 있을 따름이다. 스타일, 형태, 존재 면에서 다양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의견들의 끝없는 속살거림도 있다. 동일한 대성도 시간 분위기에 따라 붙는 이름이 다르다.’ (258쪽)

 가장과 아버지의 책임과 역할을 모두 아내에게 미루고 독특한 소설을 쓰는 아르투어의 이야기는 그의 소설 <가족>이 대신한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설은 남다르다. 다양한 직업과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의 아버지. 아버지로 존재하면서도 아버지가 아닌 사람, 아버지는 수많은 개인이자 우리였다. 결국엔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다이엘 켈만은 소설에서 거짓과 진실에 대해 말한다. 소설 속 인물은 두 개의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 욕망을 성직자라는 옷으로 가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위장하고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킨다. 가짜였다가 진짜가 되기도 하고 거짓에서 진실을 보고 우연처럼 찾아오는 운명을 믿고 사는 우리의 삶이 여기 <에프>에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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