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소설 '진짜인듯 진짜아닌 진짜같은 너'
고종석 소설 '진짜인듯 진짜아닌 진짜같은 너'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18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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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독고준>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과거의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감상에 젖는다. 또렷하게 살아나는 지우고 싶은 기억은 당황스럽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사람의 기록을 읽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운 사람이 남긴 일기라면 더 그럴 것이다. 고종석의 <독고준>(새움출판사. 2010)은 그런 이야기다. 

아쉽게도 이 소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지 못했다. 독고준의 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버지 독고준과 딸 독고원의 삶을 다룬 소설로만 다가온다.

 소설은 독고준의 자살로 시작한다.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던 날 그는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자살을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일기를 딸 독고원이 읽게 된다.

 그의 가족은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간 기록은 담담하면서도 평온했다. 독고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고준의 삶을 만날 수 있기에 액자소설이라 볼 수 있다. 독고준의 일기는 단 한 줄의 짧은 기록을 남긴 날도 있고 장문의 글을 남긴 날도 있다. 소설가의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어떤 일기는 논평이고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이자 비평이기도 하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 28일부터 2007년 12월 19일까지다. 새로운 정권 이후의 일기는 없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일흔넷 독고준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무려 48년의 기록인 일기는 순차적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월별로 공개된다. 독고원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류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기에 비주류였던 소설가로 살아온 아버지의 고뇌와 비애,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일기를 통해 표현했던 아버지. 전처 자식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작은 딸과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자 큰 딸을 향한 무한의 사랑을 기록한 일기를 읽으면서 모두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독고준의 일기를 통해 지난 시대의 정치와 문학을 만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책과 시의 등장이 무척 인상적이다. 소설가나 시인, 문학가들의 실명이 드러나기에 마치 논픽션이 아닐까 착각에 빠져든다. 그것은 저자 ‘고종석’이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이기 때문이다. 소설 형식을 띈 자서전이나 수필이라고나 할까.

 ‘작가의 문학세계와 그의 삶은 일치할 수 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을 듯하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격언은 아주 깊다란 수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옳다. 인류는 교활해서, 자신의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릴 수 있다.’ (397쪽)

 일기에는 유독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부고에 대한 기록이 많다. 삶은 그렇게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는다. 독고준은 분명 가상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존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정말 묘한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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