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빛나는 하늘은 라일락 색조처럼
[명문장] 빛나는 하늘은 라일락 색조처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13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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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예술가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색채를 보는 게 분명하다. 화가가 바라본 풍경에는 유독 색이 많다. 강렬한 색채로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글로 잘 알려진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2005)엔 유독 색에 대한 묘사가 많다. 글로 보는 그림이라고 하면 맞을까. 자연의 색으로 그려진 거대한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해가 뜨면서 광야에 흩어져 있는 오두막집 여기저기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앙상한 포플러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시골집, 흙봉분과 너도밤나무 울타리가 있는 교회 묘지 안에 잇는 낡고 땅딸막한 탑, 광야와 밀밭의 단조로운 풍경……. 지나치면서 바라본 모든 것이 코로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생각나게 했다. 그가 그렸던 고요함, 신비, 평화가 그곳에 있었다. 쥘루에 도착한 것은 아침 6시였는데, 아직 어두웠다. 그렇게 이른 시각에 나는 진짜 코로를 본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집이나 마구간, 양 우리, 헛간의 지붕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정면이 넓은 이곳의 집은 멋진 청동빛의 떡깔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황금빛을 띠는 녹색의 이끼, 붉거나 푸르거나 노란빛을 띠는 짙은 라일락 그레이의 땅, 자그마한 밀밭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녹색, 느슨하게 매달린 채 황금색 비에 소용돌이치듯 휘날리는 가을잎, 그 속에 우뚝 서서 검은색으로 젖어 있는 포플러나무, 자작나무, 라임오렌지나무, 사과나무…….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듯 빛이 스며드는 게 보인다. 그 색채는 얼마나 인상적이던지.

고요하고 밝게 빛나는 하늘은 라일락 색조를 간신히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부유스름하다. 그것은 빨강, 파랑, 노랑이 떨리면서 반사되는 흰색이면서도, 아래쪽에 있는 옅은 안개와 흐릿하게 뒤섞여 섬세한 회색빛을 띠고 있다.’(103~104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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