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부모를 살해할 계획
완벽하게 부모를 살해할 계획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04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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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오늘의 작가상 수장작 이재찬의 <펀치>

‘나는 5등급이다.’ (9쪽)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2013 오늘의 작가상 수장작 이재찬의 <펀치>(민음사. 2013)는 주인공 방인영의 당돌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가치를 점수, 등급, 스펙으로 증명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기도 전에 독자에게 고3 인영과 5등급은 동급이 된다. 인영은 외고를 목표로 했지만 떨어졌다. 외모와 성적 모두 부모의 기대에 어긋난다. 인영 역시 부모를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부모도 다르지 않다. 엄마는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아빠는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관계다.

 ‘사회가 개인에게 꿈을 주입하고 개인은 자신의 비용을 들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열매는 사회가 가져간다. 개인은 소비 능력을 얻지만 그건 사회에 헌신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29쪽)

 종교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경제력, 지위, 권력이 중요하다. 인영은 모임에서 고양이를 죽이는 계약직 공무원인 40대 ‘모래의 남자’를 만난다. 인영은 남자에게 살인을 의뢰한다. 완벽하게 부모를 죽일 계획을 지시한다. 인영에게 부모는 자신을 구속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외모 1등급의 엄마와 방 변호사가 없어도 인영은 잘 살 수 있었다. 돈만 있다면 뭐든 가능한 세상이 아니던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과 대기실에서 연기를 벗는 것의 연속이다. 사람들은 나를 계속 무대 위에 올리려 할 거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가련한 여자로서 나는 연기해야 한다. 평생 무대에서 살지 않으려면 이들과 하나하나 연을 끊어야 한다.’ 152쪽

 ‘나는 5등급이다.’란 문장은 단순히 성적에 대한 비관이나 대학 입시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 정도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존속살인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통해 이 사회를 고발하고 비판한다. 고3 인영의 주도면밀하고 거침없는 행보는 사실 통쾌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에 섬뜩하다. 단순한 10대 소녀의 반항이 아니라 뭐든지 등급으로 나누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어느새 계급사회로 전락한 세상에서, 더 높은 계급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향한 인영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력한 펀치를 제대로 맞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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