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수식이 우리 세계관 바꿀 수 있을까
수학수식이 우리 세계관 바꿀 수 있을까
  • 북데일리
  • 승인 2007.03.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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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자연과학 서적은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사고를 요구한다. 독자 역시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는 지식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사실 물리학 분야의 이론은 오랜 시간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고 또한 일상과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책이 있다. 세계적인 수리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의 <황제의 새 마음>(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6)이라는 책이다.

로저 펜로즈는 옥스퍼드 대학의 라우스 볼 수학 석좌교수이며 동료인 스티븐 호킹과 함께 블랙홀 이론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대중적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과학의 첨단이라고 하는 컴퓨터가 과연 인간의 의식을 모방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전산학, 철학, 수학, 고전 물리학, 양자론, 우주론, 신경 과학 등의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

책에는 수학 수식이 많이 등장하는데 수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수식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수식이 나오는 부분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넘어가라고 조언한다. 과학자와 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심신 상관 문제(mind-body problem)` 를 저자는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현대 물리학이 이루어낸 성취들과 아이디어들을 동원하고 있다. 우선, 컴퓨터에 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보는 강인공지능(strong AI)론자들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의식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컴퓨터, 계산기계, 온도 조절 장치와 같은 단순한 기계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두뇌의 알고리즘은 엄청나게 복잡하지만 그 원리를 안다면 기계에 적용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을 간단한 워드프로그램에 글을 쓰는 것으로 표현하면, make 라는 단어를 쓰고 이것을 이동식 디스크에 저장한다. 그리고 다른 컴퓨터에서 make 라는 단어가 적힌 파일을 불러온다고 했을 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정보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논리이다. 즉, 인간의 경우에 두뇌와 의식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데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것이 꼭 두뇌일 필요는 없으며, 컴퓨터 속의 정보의 형태로 유입 되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전개한다.

“저런, 당신을 원격 이동기에 넣기 전에 투약한 약 기운이 좀 일찍 떨어져 버린 모양이군요? 그건 약간 재수가 없었네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하여튼 기쁜 소식은 또 다른 당신...... 어...... 내 말은 실제의 당신은 금성에 안착하였다는군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당신...... 어...... 복사본은 없애 버려도 무방하겠네요. 물론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미래에 가능하게 될 원격이동의 모순적 상황을 통해 저자는 강인공지능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한다. 의식에 있어 하드웨어가 중요하지 않다면, 두뇌에서 컴퓨터로의 유입이 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컴퓨터는 어디에나 있다. 만일 나의 의식이 복수의 하드웨어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현재의 과학에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나는 수학에서 - 최소한 매우 심오한 수학적 개념의 경우 - 어떤 에테르적인 영원한 존재가 있다는 믿음이 다른 경우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한 수학적 아이디어에는 예술이나 공학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비교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철저한 고유성과 보편성이 존재한다. 수학적 개념들이 그와 같이 영원하고 에테르적인 의미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견해는 고대(기원전 360년)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그 때문에 이러한 견해는 종종 수학적 플라톤주의(Platonism)라고 불린다.“

이 책의 논증의 기반은 이러한 플라톤주의에 의해서 받쳐있고 있다. 저자는 물리학, 수학 이론들이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미.적분, 복소수, 만델브로트 집합이 수학자들의 추상적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신이 부여한 세계의 속성을 수학자들이 발견해 낸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컴퓨터가 인간두뇌를 모방할 수 없는 근거로써 “계산불가능”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저자는 “만능 튜링 기계”와 “괴델의 정리”를 통해 어떠한 알고리즘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계와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이러한 “계산불가능”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는데, 기계와 달리 인간은 “계산불가능” 문제를 풀어보지도 않고 알아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수학계의 미해결문제로 알려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 책은 1989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되었고 6년 후에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에 의해 정리가 증명되었음)를 통해 컴퓨터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계산불가능“ 문제인지를 정해진 알고리즘 안에서 알아낼 수 없지만, 인간두뇌는 알고리즘을 거치지 않고도 직관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의식의 문제는 고전물리학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때의 과정을 보면, 잡다한 여러 가지 생각들의 바다 속에서 하나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비로써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관측문제와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그러니까 수면으로 떠오르기 전 무의식의 영역은 사실상 두뇌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인데, 여기서 저자는 의식적 활동은 비알고리즘 이고, 무의식적 활동은 알고리즘으로 해석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는데, 사실 이것은 일반의 통념과 반대된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무의식적 활동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의식을 기계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인간은 대뇌와 소뇌가 있는데, 대뇌는 시각과 촉각을 비롯해서 정신적 활동을 담당하고, 소뇌는 운동신경을 담당 한다고 보고 있고, 이러한 소뇌의 활동은 알고리즘을 통해 기계로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수학적 통찰력, 영감, 독창성, 사고의 비언어성과 같은 인간만의 특성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일까?

“마음이 수학적 아이디어를 감지할 때마다 플라톤식 수학적 개념의 세계와 교감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수학적 진리를 ‘보게’되면 그의 의식은 이 아이디어(이데아)의 세계로 뚫고 들어가 직접적인 접촉(‘지성을 통해서만 도달함’)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수학자들이 서로 의사 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 수학적 진리로의 직접 통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의식은 수학적 진리를 ‘본다’는 관점을 이용하여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알고리즘을 통해 기계에 의식이 생길 수 있다는 강인공지능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고전물리학의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 하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주어진 인간의 의식을 알고리즘의 분석을 통해 기계가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책 전반에 나타난 저자의 지식은 경이롭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만능 튜링 머신과 괴델의 정리, 양자역학, 양자중력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의 플라톤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세계는 허상이며 수학 수식으로 표현되는 플라톤적 세계가 진짜라는 저자의 주장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이다.

수학 수식이 현실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표현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세계관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은 기존의 물리학 이론, 특히 양자역학에 대해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양자중첩 상태에서의 측정 문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그것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수식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적인 상태라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주장을 저자는 패배주의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결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때로는 너무 지나쳐서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것은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삶을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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