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의 따뜻한 승리`...아다치 미츠루의 `키네`
`평범한 사람의 따뜻한 승리`...아다치 미츠루의 `키네`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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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다면 역시 스포츠, 그 중에서도 야구입니다. 대부분의 야구만화가 그러하듯,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속 주인공도 언제나 에이스 투수입니다. <터치>의 타츠야가 그랬고, 〈H2〉(대원아이씨)의 히로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빛나는 주인공만 있어서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숙적인 라이벌이 있어야 하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야 하고,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여자도 있어야 합니다. 아다치 미츠루는 작품 속에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용광로에서 녹여내듯 절묘하게 배치해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터치>나 〈H2〉를 초장기 연재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의 캐릭터 가운데 〈H2〉에 나오는 키네는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캐릭터는 전형적인 훼방꾼 캐릭터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에서 꼭 나옵니다. 약간 얍삽하게 생겨가지고는 여자를 밝히고 다른 사람 흉보는 것을 즐기고, 쪼잔하고 치사하고, 정말 온갖 나쁜 건 죄다 가져다 붙인 듯한 캐릭터입니다.

아다치 미츠루는 이런 캐릭터를 다양하게 변주해냈습니다. <미유키>의 켄지는 말 그대로 마사토와 미유키의 사이를 훼방 놓는 방해꾼 캐릭터였던 반면, <일곱빛깔 무지개>의 쇼고는 주인공인 시치미를 죽이려드는 철저한 악역, 그러나 〈H2〉의 키네는 그런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주인공의 방해꾼에서 나중에 조력자로 돌아서는 독특한 케이스입니다.

사실 키네라는 캐릭터에게 처음에 호감을 가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축구부의 스트라이커로 센카와 고등학교의 야구서클을 없애기 위해 온갖 수를 꾸미고, 센카와 야구부 매니저인 하루까를 짝사랑하면서 하루까가 좋아하는 히로를 적처럼 여깁니다. 게다가 고교 최고의 타자 히데오에게는 리틀야구 시절 자신의 4번 타자자리를 뺏어갔다는 이유로 역시 묘한 적개심을 나타냅니다. 한 마디로 키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형 캐릭터입니다. 그러다보니 누구 하나 그를 좋아하지 않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캐릭터입니다.

어린 시절 소원으로 `고시엔(甲子園 : 전 일본 고교 선수권대회)에서 삼진을 많이 잡고 싶다`고 말하던 키네는 3학년 여름, 고시엔 8강전에서 꿈에 그리던 고시엔 선발 등판을 합니다. 리틀야구 시절 소속팀에서 에이스였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히로에게 밀려서 중견수를 보던 키네지만, 투수의 꿈을 계속 간직한 채, 등판 기회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투구연습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꿈의 무대라는 고시엔에서 완투승을 거둡니다.

키네의 완투승 장면은 〈H2〉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명장면입니다. 9회 수비를 앞두고 지쳐서 키네는 히로와 교대해달라고 하지만 감독은 되려 히로를 아예 라인업에서 빼버립니다. 마지막 공이 외야로 날아간 순간, 아다치 미츠루는 외야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외야를 바라보는 키네의 지친 표정을 마지막으로 보여준 후, 기차역 대합실로 장면이 바뀝니다. 그리고 대합실 구석 커피숍의 TV에서는 승리를 거둔 후 두 팔을 치켜들고 울먹이는 키네의 모습이 조용하게 보입니다.

키네는 만화속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겉보기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처럼 행세하지만 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합니다. 그런 보통 사람이 평생 꿈에 그리던 고시엔, 그것도 4000여개의 학교가 탈락한 후 강호들만 남은 8강전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간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능력들을 지닌 소년들이었습니다. 강속구를 쉬지 않고 던지는 <터치>의 타츠야나 〈H2〉의 히로, 자유형 일본 신기록을 세우는 <러프>의 야마토처럼 그의 주인공들은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곁들여진 초인적인 캐릭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키네는 노력은 할지언정 타고난 재능은 보잘 것 없는 범인(凡人)에 불과합니다.

만화에서 주인공도 천재도 아닌 키네의 승리는 그렇기에 정말 조용하고 담담하게 보입니다. 마지막 그의 승리장면이 보이는 것이 누구나 지나다니는 기차역 대합실이란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도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아다치 미츠루의 따스한 격려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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