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적 글쓰기`의 묘미...베른하임의 4종 세트
`여성적 글쓰기`의 묘미...베른하임의 4종 세트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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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작년 늦가을 즈음이었나 봅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한참 문장에서의 비문과 작가들의 문체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가 대학원 동기가 “언니, 베른하임의 책, 문체 살펴볼 때 꽤 읽어볼 만해. 꼭 한 번 읽어 봐.” 했을 때 “으응, 알았어”하며 넘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얼마 전 한참 지난 제 생일 선물로 주문해 놓았던 책이라며 저에게 베른하임의 책을 두 권 건네주었습니다. <잭나이프>(작가정신. 2000)와 <그의 여자>(작가정신. 1998)였습니다. 어떻게든 읽어보게 하고는 싶은데 읽어야 할 책이 넘쳐 읽을 것 같지 않아, 손에 쥐어줘야 읽겠다 싶었나 봅니다. 가을에 이름을 듣고 겨울동안 묵혔다가 봄에야 손에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황송하게 엠마뉴엘 베른하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꽤 인상적으로 다가와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리고 있으니 그 친구에게 고마워해야겠죠? 저는 책 두 권을 읽은 즉시, 베른하임의 다른 책 두 권을 더 구입했습니다. 나머지 책들의 제목은 <커플>(작가정신. 2000)과 <금요일 저녁>(작가정신. 1998)이었고, 이로써 저는 베른하임의 알록달록 전작 네 편을 뿌듯해하며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베른하임의 <금요일 저녁>을 읽다가, 아, 했습니다. 그녀와 저는 구면이었습니다. 몇 년 전 여차저차해서 갑작스럽게 클레르 드니의 <금요일 밤>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일탈은 아니었지만 당시 일탈을 꿈꾸었던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어둠 속을 유영하듯 한참 동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주어 감각을 집중해 영화를 보았었고, 몸살이 다 났었죠. 게다가 영상이 뇌리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는 바람에 고역을 치렀습니다. 알고 보니, 그 영화의 원작자가 바로 엠마뉴엘 베른하임이더군요.

베른하임의 소설은 물이 들어있지 않은 빈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투명하고 건조하며,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엷은 공명이 푸른빛이 되어 빈 어항 전체에 퍼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는 렌즈를 줌으로 당길 때 나는 소리가 들릴 것 같기도 합니다. 작가는 시선에 따라 이동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을 연출합니다.

<그의 여자>는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작입니다. ‘메디치상’은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상입니다. 짧은 길이의 소설, 간결체의 문장과 감각, 그 중에서도 후각에 의존해 서술하는 문체의 독특함은 꼭 느껴보실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고냥씨같은 욕심쟁이들로 하여금 전권을 세트로 소장하게 만들어 버리니까요.

베른하임은 ‘여성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른하임의 소설은 논리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의미나 이미지 자체로 와 닿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올바른 감상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소설을 분석하려고 드는 사람의 경우, 게다가 프랑스 소설은 어렵다는 편견까지 갖고 계실 경우, 베른하임의 소설을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성적 글쓰기’의 방식을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계셨을 때,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일단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여성적 글쓰기는 감각에 의존하고 획기적인 충격, 그리고 일탈을 조장하는 경향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성의 상투화나 지나치게 감각에 의존한 글쓰기가 문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감성적 느낌과 화려한 묘사만으로는 문학이 완성될 수 없으므로 이를 다라고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여성적 글쓰기’로 쓰여진 글들은 인과를 따진다거나 이데올로기를 객관적 진리라고 여기며 의미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이미지와 의미를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므로 ‘남성적 글쓰기’와는 확연히 차이를 보입니다. 수잔 랜서는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적 규율을 우회하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적 글쓰기’는 실제로 플롯이 간결하거나 플롯이 없다고 여겨져 비판받는 경우도 있는데요.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적 글쓰기’와는 동기나 효과 등이 다르며,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는 잠재된 행동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는데 그 묘미가 있습니다.

수잔 랜서는 또한 ‘여성적 글쓰기는 미메시스적(모방(模倣) ?흉내와 함께 예술적 표현도 의미하는 수사학(修辭學) ?미학 용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문학을 ‘삶의 재현, 현실의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베른하임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그대로 현재를 살고 있으며, 독자가 여성일 경우, 공명이 크다보면 그들의 상황을 어느덧 자신의 삶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현재 베른하임의 소설은 총 네 권이 나와 있습니다. 작가는 12년 동안 100쪽 남짓한 소설 네 편만을 썼습니다.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네 권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인물들이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같은 표지 다른 색깔로 만든 작가정신의 센스가 더욱 유기적인 느낌을 들게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1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초판이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베른하임의 소설은 네 편이 다이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영화 평론도 하고, 드라마와 시나리오를 쓰며 여전히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녀가 쓴 드라마나 시나리오는 어떨까, 궁금해지네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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