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첫 선물 '칼과 도마'
시어머니의 첫 선물 '칼과 도마'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5.04.12 11: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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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장 이야기>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도마는 식재료와 음식을 썰고 다질때 주로 사용된다. 매일 칼질을 해대니 도마가 성할 날이 없다. 거기다 김치국물, 생선비린내, 고기 누린내, 마늘 냄새, 생강냄새 등 온갖 냄새를 품고 산다. 한 평생을 견디며 제자리를 지켜온 우리네 어머니들 모습과도 닮았다.

<식기장 이야기>(송영애.채륜서.2014)는 우리나라 전통 식생활과 관련 있는 도구들을 정리해서 묶었다. '식기장'이란 '식기를 비롯한 갖가지 식도구를 보관하는 장'을 말한다. 책에는 30여 가지 식도구와 식생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책 내용중 음식을 만들 때 주로 쓰는 ‘칼과 도마’에 담긴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여자들이 시집갈 때 챙겨가는 크고 작은 살림도구가 혼수품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혼수품으로 챙겨가지 않는 것이 있다. 칼과 도마다. 그건 시어머니가 직접 챙겨주었다. 칼과 도마가 며느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이제 내 집 사람이 되었으니 칼로 자르듯 친정과 인연을 끊으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칼처럼 매운 시집살이를 도마처럼 묵묵하게 견디라는 뜻이다.-144쪽

친구네 집에 갔더니 주방에서 외제 상표가 붙은 칼세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사주신 100만원이 넘는 칼이란다. 칼값이 비싼 것도 놀라웠지만 시어머니가 해주셨다는 말에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이런 결혼 풍습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친구는 이런 뜻을 알고 칼선물을 받았을까? 검색을 해보니 지금도 결혼할 때 ‘칼과 도마’는 시어머님이 사준다는 글이 있다. 풍습이지만 속설이니 계속 유지되어야 할까. 시대가 바뀌었으니 사라져야할 풍습일까.

부엌에서는/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 가는 냄새/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맞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중략) 촛불과 같이/ 나를 태워 너를 밝히는/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 소름 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소리가 똑똑히 들려요./ 수줍은 새악시가 홀로/허물 벗는 소리가 들려와요./우리 부엌에서는.

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작은 부엌 노래’이다. 시인은 여자들의 공간인 부엌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를 통해 고단한 삶을 드러낸다.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소름 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소리가/똑똑히 들려요.”라는 시구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칼질하는 소리로 들린다. 시인은 가부장적 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자들이 운명을 도마에 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자들이 도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요즘은 기발한 주방용품들이 나오고 있다. 다지기, 슬라이서, 믹서기, 국수기계까지.특히 혁신적인 주방용품이 '가위'다.

과거에는 음식물에 가위를 들이대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이제는 할머니들도 음식물을 가위로 능숙하게 자른다. 심지어는 포기김치조차 집게로 잡고 가위로 자른다. 손에 김치 국물 한 방울 묻힐 일이 없어졌다.-148쪽

요즘은 가정이나 식당에서도 도마의 기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위'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젠 주방생활의 필수품이었던 도마도 추억의 물건이 되는 건 아닐까.

이 밖에도 돌확, 신선로, 바가지, 제기, 가마솥, 수저, 맷돌, 유기그릇 등 사라져가는 식도구의 그리운 옛숨결을 만날 수 있다. 책에 실린 그림과 이야기는 옛것의 가치를 새롭게 하고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마음에 울림을 준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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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a 2019-06-06 13:30:53
참 기가 찬 속설이네요 호주제가 폐지되었으니ㅡ망정이지 친정(이 말도 호주제의 잔여물이죠 내 본가인데 왜 갑자기 친정이 되나요 남편은 자기 부모님 그대로 부르는데) 과 연을 끊으라니;;시집귀신 되라는 끔찍한 옛사상. 저래놓고 자기들이 딸만 낳아서 나중에 시가로부터 칼 도마 받고 연끊김 당하면 참 좋겠네요 그러니 그걸 방지하려고 아들 날으려고 기를 썼을거구요 지긋지긋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