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죽인 범인에게 맞는 형량은?
딸은 죽인 범인에게 맞는 형량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3.30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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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고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

[화이트페이퍼] [북데일리] 잘못을 했을 때 혹은 규칙을 어겼을 때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주어진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지각을 했을 때 벌칙은 청소가 대부분이었다. 지각 사유와 상관없이 무조건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일에 예외를 두지 않는 게 맞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법의 심판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히가시고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자음과모음.2014)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단란하고 평범한 한 가정이 무도한 침입자에 의해 풍비박산되었다. 나카하라는 직장에서 아내 사요코의 전화를 받는다. 딸이 죽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은 강도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는데 경찰은 부모를 조사한다. 가장 힘겨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범인은 잡혔고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딸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서로에게서 딸을 떠올리는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이혼을 선택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사요코가 집 근처에서 살해당한다. 단순히 돈을 노린 노인이 사요코를 해치고 바로 자수했다는 것이다. 경찰에게 사건을 전해 들은 그는 사요코의 부모님을 만난다. 이혼 후 사요코가 형벌 시스템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나카하라는 놀라고 만다. 사요코는 여전히 딸의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 가장 합당한 형벌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사형이라고 말할 것이다. 유족은 범인을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할 수도 없다. 평생 고통의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사요코의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다. 범인이 자수를 했고 용서를 구한다고 해도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요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니카하라는 사요코의 기사와 원고에 관련된 사람들과 차례로 연락을 취한다. 11년 전 딸을 죽인 범인의 변호사는 범죄자들이 감옥에서 진정으로 갱생되는지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 (201)쪽” 고 언급한다. 정말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이다.

사요코의 경우 범인이 자수를 했기 때문에 사형보다 무기징역 쪽으로 기운다. 거기다 범인과 사위인 의사 후미야가 직접 사죄의 편지를 보내며 죄를 뉘우치고 있어 사형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점이 이상한 니카하라는 후미야에 대해 알아보다가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사요코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존재했다.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하기시노 게이고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복수의 사건을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해 모두에게 묻는다.

“인간이 완벽한 심판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441쪽)

법은 피해자와 피의자 양쪽에게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완벽한 심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히가시고 게이고. 그가 던진 질문은 영화 <밀양> 속 아이를 잃고 절규하는 전도연을 떠올린다.

정녕 죄를 뉘우칠 수 있는 형벌은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남겨진 유족은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마냥 재미있게 읽기엔 다소 무거운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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