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들고온 <일식>의 히라노 게이치로
SF소설 들고온 <일식>의 히라노 게이치로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5.03.24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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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탐사 우주인 주인공... '분인주의' 다뤄

[북데일리] <일식>으로 미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혜성처럼 나타난 히라노 게이치로가 SF 장르 소설 <던─중력의 낙원>(문학동네. 2015)을 내놓았다. ‘던’은 영어로 dawn, 새벽 여명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는 우주선 이름이다.

배경은 화성 탐사다. 2033년 여섯 명의 우주인을 태운 NASA의 ‘던’이 인류 최초로 유인 화성탐사에 성공한다. 주인공은 ‘던’의 우주비행사로 지원한 일본인 외과의사 사노 아스토다. 지원 배경엔 아픈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대지진으로 외아들을 잃자, 그 아픔을 우주를 향한 새로운 도전으로 극복하려 한 것이다.

그는 이 년 반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면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화성에서 겪은 모종의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던’의 여승무원 생물학자 릴리언 레인이 선내에서 임신 후 중절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둘 관계가 의심받게 된 것. 레인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딸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소문은 코앞에 닥친 대통령선거의 대형 스캔들로 번진다. 그 과정에서 ‘던’ 프로젝트의 이면에 깔린 음모가 드러난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사회적 자아와 개인의 정체성 문제다. 어느 가수가 노래하듯 인간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사회 속에서 자아가 분열되는 상황을 작가는 ‘분인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분인주의란 결코 나뉠 수 없는 고유의 개인이 실은 무수한 분인의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대와 상황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것.

인간의 몸은 하나뿐이니 그걸 나눌 방법은 없지만, 실제로 우리 자아는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 당신과 마주하는 나, 부모님과 마주하는 나, NASA에서 노노와 마주하는 나, 실장과 마주하는 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바뀔 수밖에 없지. 이런 현상을 개인의 분인화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각각의 내가 분인이지. 곧 개인은 분인의 집합인 셈이고. 이런 사고방식을 분인주의라고 해. _본문에서

이 분인주의는 주인공을 통해 표출된다. 사노 아스토는 여러 개의 자아를 지니고 있다. 화성에 다녀온 인류의 영웅으로서, NASA 소속의 우주비행사로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세상을 들썩이게 한 스캔들을 일으킨 릴리언의 동료로서의 복합체다. 이것이 충돌하며 갈등을 빚는다.

책은 미래 소설인 만큼 특이한 SF적 상상력이 포진되어 있다.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홀로그램이 등장하는가 하면 콘택트렌즈형 모니터를 통해 신원을 파악하며, CCTV에 찍힌 얼굴로 시시각각 모든 행적이 감시된다.

또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사물에 대한 관조적인 문체는 별처럼 반짝인다. 아스토가 아내 교코와 나누는 대화인데 지구를 다음처럼 묘사했다.

“아,... 맑고 파란 하늘 너머에는 인간을 단 일 초도 살려두지 않는 절망적인 어둠이 펼쳐져 있어... 그토록 완벽하게 죽음에 포위된 지구가 그러면서도-아니, 그렇기 때문일까 - 어떤 행성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야말로 압도될 것 같은 아름다움으로 덩그러니 떠 있지. - 믿어져?“ 20쪽

글에 따르면 지구는 어둠으로 지탱되는 아름다움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팬들로선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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