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의 서재에 담긴 삶의 철학
옛 선비의 서재에 담긴 삶의 철학
  • 한지태 기자
  • 승인 2015.02.05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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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서재 엿보는 <서재에 살다>

[북데일리]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서재에서 시작되고 갈무리 되었다.“ -9쪽

예나 지금이나 서재는 지식과 창의의 산실이다. 조선시대를 만든 선비문화의 시작과 끝 역시 서재일 터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지식인들은 서재 꾸미는 일에 지극정성이었다.

<서재에 살다>(문학동네. 2014)는 옛 지식인들 24명의 서재로 안내하는 책이다. 먼지 쌓인 책 더미를 헤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재의 이름이다. 선배들은 서재 이름을 허투루이 짓지 않고, 자신의 취미나 생각, 처지 나아가 이상을 담으려 노력했던 듯하다. 즉 서재 이름은 주인을 말해준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이 서재 이름은 마치 사람에게 붙는 ‘호’처럼 중요하다. 이 이름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주인의 생각과 연결된다. 예를 들여 홍대용의 서재는 ‘담헌’이었다. 담(湛)은 맑다는 뜻이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반정균이라는 선비는 다음과 같이 풀이 했다.

“담헌에는 청명과 허백의 의미가 담겨있다. 청명은 몸가짐이 깨끗하다는 뜻이고, 허백이란 마음속이 텅 비어 깨끗하다는 뜻이다.”

이런 해석을 듣고 나면, 듣는 이들은 서재 이름으로 당사자의 인품을 헤아리지 않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서재 이름을 노자의 말에서 따와 ‘여유당’이라 지었다. 이 이름에는 삶을 반성하고 학문을 갈고닦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與)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하고, 유(猶)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알고 보면 한 시대와 ‘조심스러웠던’ 그의 삶이 들어있는 것이다.

‘여’는 큰 코끼리를 가리킨다. 겨울에 살얼음이 언 시내를 육중한 코끼리가 건너가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얼음은 깨지고 코끼리는 차가운 물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조심조심 건너가야 한다.“ 141쪽

그 외에 특이한 서재이름이 많다. 이를테면 ‘기하’는 수학과 역산학을 좋아했던 유금이란 선비의 서재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라는 이름도 있다. 풀이하면 102개의 벼루를 갖추고 있는 오두막집이란 뜻이다. 이는 조서 후기의 화가 조희룡의 서재 이름이다.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열두 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이야 말로 평생 벼루에 미쳐 살았던 조희룡의 서재에 가장 알맞은 이름이었을 것이다.” -251쪽

저자 박철상은 “서재 이름에 담긴 의미를 통해 지변화의 시대를 살아간 식인들의 내면과 당시의 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이 책의 저술동기를 밝혔다. 오래된 책과 고고한 선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아취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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