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청춘에게 '감성 고백'
청춘이 청춘에게 '감성 고백'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2.30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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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

[북데일리] 청춘은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부유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잘 그려낸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의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2014. 문학동네)속 청춘도 그러하다.

 소설은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쓰듯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울의 새 캠퍼스로 이전하는 지방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동아리 선배 요조와 동거 중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도시를 요조는 고아의 도시라 불렀다. 그러니까 젊음이나 활기는 사라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만난 민영이 고아의 도시를 방문한다. ‘나’를 찾아온 것이다. 입양아 민영은 열여덟 살부터 누군가의 소파를 빌려 생활하는 여행자다.

 ‘나’는 학기가 끝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취집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한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죽음으로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이다. 요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연락을 끊고 지낸다. 양부모님의 이혼으로 독립한 민영과 다르게 자발적으로 독립한 셈이다. 소설은 서로 닮은 듯 다른 세 명의 청춘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세 명이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어떤 놀라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민영이 오면서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하는 요조가 자신의 고시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쓸쓸한 대학가 주변을 스케치하거나 일상을 나열함으로 자신의 불안을 드러낸다. 하여 불안의 깊이는 알 수 없다. 그 불안이 넓게 퍼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고아의 도시를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불안하고 초초하다.

 ‘나는 세탁기로 다가가서 정지버튼을 눌렀어. 물소리가 그치자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작게 들려왔어. 몇 겹의 벽과 창을 거치느라 뭉툭해진 소리였지만 말이야. 나는 창을 활짝 열었지.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어. 맞은편에 주르륵 늘어선 건물들이 보였어.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동네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방들 중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을 거야.’(17쪽)

 ‘나’는 어떤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서 해야 할지, 소설 쓰기에 전력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을 요조나 민영을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전까지 민영이 언제까지나 소파를 옮겨다니면서 지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그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어. 나는 민영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 씩씩하게 보이는 그애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거야.’(85쪽)

 청춘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 때는 알 수 없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그 시절도 끝이 있다는 걸 몰랐다. 결국엔 셋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말이다.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청춘의 감성을 차분하게 잘 담아냈다. 청춘을 살아내고 견디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진짜 청춘이 청춘에게 들려주는 고백 같은 소설이다.

 ‘나는 처음으로 남겨지는 사람이 되었어. 태어날 때부터 살던 집에 아빠를 남겨놓았고, D시에 엄마와 오빠를 남겨두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었는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나는 별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남겨지고 나니 떠난 사람들밖엔 생각할 수 없더라고. 내가 보는 모든 자리에 그들이 앉거나 섰던 그림자들이 놓여 있더라고.’(140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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