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눈 위치가 바뀌는 물고기
자라면서 눈 위치가 바뀌는 물고기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11.24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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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들어 있다>

 "꾸덕꾸덕 마른 굴비를 방망이로 두드려 부드럽게 한 뒤 뼈를 다 발라내고 찢어서 내 온 것이다. 물에 만 밥을 한 숟가락 떠서 그 위에 굴비 한 점을 얹어 오물오물 씹으니, 그 옛날 어머니가 한여름 점심상에 올려주셨던 바로 그 맛이었다. 술기운에 열이 올랐던 몸과 마음은 찬 녹찻물에 만 찬밥, 그리고 그 위에 얹은 굴비 한 점에 금세 ‘쿨’해졌다." -본문 중에서

 [북데일리] 바다와 물고기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는 해양학자가 있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 2013)의 저자 황선도 박사다. 저자는 30년간 우리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연구해 '물고기 박사'로 불린다. 이 책은 우리가 철철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명태, 고등어, 멸치 등 16종 바닷물고기에 대한 첫 보고서다.

 책은 목차만 훑어보아도 익숙한 제 철 물고기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월 명태, 2월 아귀, 4월 조기, 5월 멸치,7월 복어, 9월 갈치, 등 우리가 먹지만 잘 모르는 물고기를 열두 달로 나눠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준다.

넙치와 가자미에 관한 이야기다. 눈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넙치나 가자미 모두 갓 부화한 새끼일 때는 다른 물고기와 같이 눈이 양쪽에 하나씩 붙어 있다. 그러나 3주 정도 지나 몸길이가 10밀리미터 정도로 성장하면 눈이 이동하는 변태를 하게 된다. 넙치 종류는 오른쪽에 있던 눈이 왼쪽 눈 옆으로 이동하고, 가자미 종류는 반대로 왼쪽 눈이 오른쪽 눈 옆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부터 물 밑바닥에 바짝 붙어서 저서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눈의 위치뿐만 아니라 몸 색깔도 달라져 등 색깔이 주변의 모래나 진흙과 같은 색으로 바뀐다. "(120쪽)

​ 입담 좋은 저자의 바닷물고기 사랑은 넘친다.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흔하던 명태는 왜 더 이상 잡히지 않을까? 뱀장어는 왜 회로 먹지 않을까? 자연산 복어에는 독이 있는데, 왜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없을까? 밥상에서, 바닷가에서, 횟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면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보았을 법하다.

 저자에 따르면 멸치도 나이를 먹는데 그걸 알아보는 방법은 귀속에 들어있는 이석을 통해서다. 이석은 칼슘과 단백질이 주성분으로 이루어진 뼈 같은 물체로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평형기관 구실을 한다. 이 이석을 쪼개거나 갈아서 단면을 보면 나무의 나이테 같은 무늬가 있어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

​ 몇 살 먹었는지, 심지어는 몇 년, 며칠에 태어났는지를 알려 주는 일일 성장선도 찾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석에는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살아온 여러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물고기의 숨겨진 비밀을 캐낼 수 있다니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 "2006년 여수에 있는 남해수산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한국방송 창원방송총국에서 남해의 대표 어종인 멸치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 중에 갈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표층에 떠다니는 멸치 떼 아래에 갈치가 ‘칼’같이 서서 낚아채듯 잡아먹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171쪽)

 9월이 제철인 갈치의 이런 습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서 있는 물고기'라고도 부른단다.  갈치를 잡을 때는 갈치미끼를 써 다른 갈치를 낚는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책은 과학자의 눈으로 물고기의 생태는 물론 이름에 담긴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매일 파도에 배 멀리로 정신 잃은 얘기, 뱀장어를 조사하다 소주 생각 나 마신 얘기, 어민들에게 대접받은 민어회 갈치속젖에 회포 푼 일화 등 조사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맛깔나게 들려준다.

 현대판 <자산어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해양 생태계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하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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