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질문이 길을 만든다
겁없는 질문이 길을 만든다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4.11.18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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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 동화 <한입 코끼리>

[북데일리] "한때 존재했다는 증표가 깔끔하고 단호하게 사라져도 사람의 기억과 시간은 여전히 내 삶을 받쳐 들고 있다. 그 힘에 기대어 흘러온 나날들이 나로 하여금 막연하고 난감한 질문을 겁없이 던지게 했다.

그러한 질문들이 또다시 수없는 길들을 만든다. 그 길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사람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한입 코끼리><큐어리스.2014)는 <어린왕자>의 책갈피에서 빠져나온 373살 보아뱀과 여덟 살 소녀가 그려낸 따스한 기억과 아름다운 성장의 이야기이다. <생각이 나서>로 10만 독자의 가슴을 움직인 황경신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생에 대한 성찰이 보석처럼 빛난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이인 화백은 초고를 보고 표지부터 본문까지 50점이 넘는 작품을 모두 새로 그렸다. 소설 이야기를 설명하거나 부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만으로도 또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와 화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 편의 소설과 한 권의 화보집을 함께 보는 즐거움이 있다.

소녀는 그림 형제의 동화 열여덟 권을 보아뱀과 함께 읽으며 한 걸음씩 세계를 배워간다.

그림형제가 쓴 열여덟 편의 동화를 씨줄로, 여덟 살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날줄로 엮어낸 이 책은 그러므로 소녀의 눈으로 질문을 찾아내고 보아뱀의 시각으로 의미를 다시 읽는 동화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동화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이유는 소녀가 꺼낸 의문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질문과 다르지 않고 그에 답하는 보아뱀의 말들이 이 세계의 진실을 담백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와 보아뱀은 ‘빨간모자와 늑대이야기’를 읽고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멋진 일을 해내고 나면 말이야.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누구도 우쭐대지 않고 너 자신인 채로 그들과 어우러지는 거지.”

“이런저런 것들을 비교하지도 않고?” 보아뱀은 긴 꼬리를 들어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

사람들은 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을 때 알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수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끝없이 생긴다는 것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언제든지 얼마든지 일어나는 게 세상이라는 것을. 하늘을 향해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도 속시원히 대답해주지 않는 질문들에 보아뱀은 작은 위로를 건넨다.

“너무 애 쓰지 마. 삶은 절절한 허구야”-243쪽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 우리에게 보아뱀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항상 질문을 해야 해. 어른이 되어서도 말이야. 질문을 하는 건, 절대로 창피한 게 아니야. 제대로 된 질문은 대답보다 힘이 세니까.” 소녀에게도 우리에게도 보아뱀은 이제 곁에 없지만, 우리는 소녀의 친구이자 멘토가 되어주었던 보아뱀을 책을 통해 불러낼 수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어서 막막할 때 이 책을 펼쳐보면 우리의 고민과 의문에 대답해주는 보아뱀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옆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있다. 직장동료나 친구, 심지어 가족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 순간 텅빈 자리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소녀는 독자들에게 바쁜 숨을 내려놓게 하는 글을 들려준다.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숨소리를 맞추고, 발걸음의 폭을 맞추고, 생각의 속도를 맞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286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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