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금서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금서가 있었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1.06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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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권의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아니, 귀신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어찌 안단 말입니까?”  “그 사람의 기운을 보고 알지요. 입을 굳게 다물고 근엄한 기운을 풍기면 장서나 사서(역사책)를 찾을 것이요,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엄숙하고 철두철미한 기운을 풍기면 법전을 찾을 것이요,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기운을 풍기면 소설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면 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보여 주고 반드시 팔곤 하지요.” (75~76쪽)

 

 [북데일리] 정창권의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2012. 사계절)은 추재 조수삼이 쓴 조선 시대에 살았던 책장수 조생에 대한 이야기다. 조생은 책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책을 팔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 조생의 나이를 아는 이가 없어 조신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화는 조생이 활보하는 한양 거리의 풍경을 묘사하며 조선 시대 서민의 생활상을 함께 보여준다. 더불어 지금처럼 출판사가 있거나 제본소가 없었던 한양에서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었는지 잘 알려준다. 그러니까 손으로 일일이 베껴서 만드는 과정과 목판 인쇄로 책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놀라운 건 그 시절에도 금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팔아서도 안 되고 읽어서도 안 되는 책은 어떤 책이었을까? 바로 영조 때 청나라의 주린이라는 사람이 쓴 <명기집력>, <강감회찬>으로 조선의 왕 태조와 인조를 모독한 내용을 담아서다. 명나라는 역사왜곡으로 조선을 흔들고 싶었던 것이다. 조생은 책을 구하는 양반이나 책을 파는 다른 책장수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영조는 그 책에 관련된 사람을 모두 엄하게 다스린다. 물론 조생은 한양을 떠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한양을 떠났던 조생은 몇 년 뒤 건장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조생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반갑고 놀란다. 조신선이라는 별명답게 조생은 늙지도 않았다. 그동안의 행적을 묻자 조생은 모른 척 한다.

 조선시대 조생이 가장 많이 팔았던 책은 어떤 책일까? 조선 후기에는 양반뿐 아니라 서민과 규방 아녀자들도 책을 많이 읽었다. 글자를 배우고 읽게 되니 책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이다. 3년에 걸쳐 완성된 180권짜리 <완월회맹연>이란 책은 작자 미상으로 양반집 아녀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내 비록 책은 없으나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얼마 동안 소장하고 있었는지, 내가 어떤 책을 얼마에 팔았는지 알고 있고, 비로 그 뜻을 알지 못하나 어떤 책은 누가 쓰고 누가 해설을 달았는지, 몇 질 몇 책인지는 다 안다오. 그러니 천하의 책은 모두 내 책이며, 천하에 나만큼 책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다오. 천하에 책이 없다면 나는 달리지 않을 것이요, 천하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나는 날마다 술을 마시고 취할 수 없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천하의 책을 통해 나에게 명한 것이니, 나는 천하의 책과 함께 생을 마칠 것이오.” (부록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책의 역사와 함께 조선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조선 시대 책이란 책은 모두 조생을 통해서 유통된 게 아닐까. 천하의 책과 함께 생을 마칠 다짐을 하며 살아온 조생, 어쩌면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서 책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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