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시집 <그늘의 정체>
[북데일리] 김주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그늘의 정체> (시인동네.2014)는 2008년 이후에 쓴 단시 중에서 75편을 묶었다. 시인은 자연 대상물 중 생명력 있는 것들을 살펴 깊은 사유로 표현한다. 짧은 시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한 그의 서정시를 만나보자.
"수많은 여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입니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저 살결 너무 고와 차마 손대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마다 한때는 저런 사람 있었겠지요" (벚꽃) 전문
벚꽃을 여인들로 비유하는 화려한 은유는 매우 감각적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바라보지 못할 한때라면 꽃 같은 젊은 날을 뜻할 것 같다. 생동하는 봄과 대조되는 겨울 서정을 보자.
"한 생을 살고 나면 누구든 모과나무가 됩니다/ 파이고 찢기고 부러진 곳에 딱지 앉고/ 문둥이 손처럼 뭉텅뭉텅 옹두리가 남아/ 그 속 깊이 험한 바람을 재우고/ 천둥 치고 비 오던 밤을 가두며/ 고단한 열매를 툭툭 떨어뜨리는 모과나무/ 단단한 침묵이 됩니다/ 누구든 한 생을 살고 나면/ 겨울나는 모과나무의 떨어지지 않는/ 그늘딱지가 됩니다 ."(딱지)전문
시인은 겨울 모과나무에 마음을 준다. 생의 주기로 본다면 겨울은 원숙한 노년이 아닐까. 그런 만큼 그가 사용하는 시어(옹두리, 그늘딱지)도 삶의 풍부한 경험과 오랜 연륜이 느껴진다. 이처럼 시인의 시 가운데는 해넘이의 풍경처럼 사유의 이미지가 가득하고 인간은 죽음을 통해 삶의 경지를 깨닫게 한다.
시의 해설을 맡은 송희복 문학평론가는 "시편마다 계절의 순환감각이 살아 있고 서정시로선 언어의 돋을새김을 드러낸 서정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의 짧은 시는 이미지로 느낌을 잘 살려낸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서정을 만끽하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시집이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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