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인문학이 좋다
나는 야한 인문학이 좋다
  • 신 현철
  • 승인 2014.10.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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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북데일리]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마광수 교수의 말에 온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그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야한 여자를 넘어 패티시즘, 사디즘을 얘기할때 사회적 매장 분위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코웃음만 나온다. 요즘 시대는 섹시하다는 건 칭찬이고 패티시즘은 유미적 취향으로까지 관대해졌다.
 
섹시함과 패티시즘을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낸시랭같은 아티스트도 등장했다. 낸시랭은 한 방송에서 악플러들을 향해 크리에이트브한 욕(?)을 주문했다. 마조히스트적인 면모를 보인 그녀라면 마교수의 철학을 전위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라고 할만하다. 마교수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최근 마교수는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라는 책을 냈다. 그의 명성에 비하면 제목도 내용도 평범하다. 인문학이라는 유행에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에 씁쓸하기까지 하다. 성의 자유를 부르짖던 그의 모습은 약해졌다. 검열에 대한 두려움때문일까? 그래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길 수 없는 게 있다.

양주는 제자백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쾌락주의자인데 에피쿠로스와는 달리 육체적 쾌락을 중시했다. “살아있을 때의 낙(樂)을 생각해야 하고 죽은 후의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광수는 '한국의 양주'이고 싶다. 또 <데카메론>의 보카치오, 사디즘의 사드를 소개하면서 자유로운 섹스와 육체적 탐닉, 더 나아가 사도마조히즘을 설파한다.

마교수의 기준은 명확하다. 중세 봉건주의의 몰락을 가속화 시키는 역할로 <데카메론>을 꼽았고, 시민혁명 또한 당시 시민계급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간 ‘포르노그래피’ 때문으로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선후기의 민란은 음담패설의 외설적 이야기책들과 탈춤이나 남사당패 놀이의 음담들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성(性)에 눈을 뜨면 자연히 민주의식에도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 그의 기준인 셈이다.

<즐거운 사라>의 판금과 마교수의 구속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그의 주장에 아직까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기존의 인문학 책들이 고전의 찬양 일색이었다면 이 책은 그것을 비틀었다. 그렇지만 예전 그의 예리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뎌진 듯 하다. 후속작으로 인문학으로 바라본 성(性)에 대한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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