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 숨어 우리를 쳐다보는 공포
삶 속에 숨어 우리를 쳐다보는 공포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0.28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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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의 <눈보라 구슬>

 [북데일리] ‘눈보라 구슬’이라는 예쁜 제목과 달리 서늘한 기운을 안겨주는 표지다.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김 휘의 소설집 <눈보라 구슬>(작가정신. 2014)속 인물들이 겪는 일들도 그렇다.

 <목격자>의 주인공 종일은 불법으로 신분증을 위조하는 일을 한다. 죄의식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 용의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경찰소사를 받는다. 사건 이후 자신을 미행하는 시선 때문에 불안하다. 범인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종일은 옆집 남자의 여자친구 소연이 살해당하는 걸 보게 된다. 소연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후 돌아가지 않고 소연을 기다리던 중 목격한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종일은 침묵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종일을 용의자가 아닌 목격자로 인정할 수 있는 이는 몇 명이가 될까. 반대로 우리가 종일이라면 신고할 수 있을까.

 신고포상금을 받는 사진을 찍는 <아르고스의 눈> 속 화자도 다르지 않다. 항상 누군가의 잘못을 사진으로 찍는 그는 어느 날 지인의 부탁으로 공작새 박제를 들인다. 그 후로 그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눈들로 벗어날 수 없다. 과거 자신을 향했던 누군가의 눈부터 현재 자신이 사진기를 통해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까지 혼란스럽다. 지인은 그저 착각일 뿐이라 무시하지만 그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공작의 깃에 있는 무늬가 마치 사람 눈처럼 생겼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전신에 백 개의 눈을 가진 거대한 괴물이 있었지. 등이나 뒤통수에도 몇 개의 눈이 있는 것으로도 묘사되기도 해. 그래서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의 파노프테스라는 별명도 얻었어. 모든 것을 보다고? 그래, 못 보는 것이 없으니 사각이란 개념도 없었을 거야. 어쩌면 인간의 은밀한 속내까지 투시해냈을지도 모르지.’ (49~50쪽)

 자발적으로 세상과 단절을 피하는 이들과 달리 간절하게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나의 플라모델> 속 탈북 소년 종안은 플라모델 가게 플라드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자신과 같은 탈북자라는 사실과 미그 19기 조종사였다는 걸 안 종안은 가게에서 플라모델 미그 19기를 훔쳐다 준다.

 ‘미그 19기는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 채 나발 아저씨 손에 천장 높이로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이륙? 그랬다. 이륙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팔뚝만 한 미그 19기 모형은 조금 전 다락방 나무 바닥을 박차고 이륙했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이융, 하는 엔진 소리는 힘찼다.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은 하늘이 되었다. 칠이 벗겨진 밤색 탁자와 나무 바닥과 누덕누덕한 매트리스는 강과 산이 되었다. 미그 19기는 궤도를 공전하듯 방 안을 날았다.’ (189~190쪽)

 종안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잊은 채 아저씨의 미그 19기를 따라 날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창용은 종안이 플라모델을 훔친 걸 빌미로 가게를 터는 일에 끌어들인다. 비밀을 지키고 무선 조종 미그 19기를 받은 종안은 탈북자 아저씨에게 선물한다. 경찰은 아저씨의 집에서 발견된 플라모델을 증거로 범인으로 체포한다. 종안과 탈북자 아저씨는 서로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것만이 진실인 것이다.

 <눈보라 구슬>은 이처럼 우리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은 불편을 감수하며 타인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라도 말이다.

 작가 김 휘는 공포 조장하는 사회, 사악한 범죄도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현대인의 욕망을 고발한다. 소설을 통해 지속되는 무관심의 결과가 결국 모두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는 무서운 결말을 보여준다. 호러 영화 그 이상의 섬뜩한 이미지는 부정할 수 없는 숨겨진 인간의 내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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