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손가락에서 솔, 입술에서 미...
[책속의 명문장] 손가락에서 솔, 입술에서 미...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2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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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이유>중에서

[북데일리] 첼로는 사람의 몸과 같고 음색은 남성과 여성을 합친 목소리와 같다고 한다. <‘나’라는 이유> (호미.2014)에는 나무첼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를 여행할 때 길거리에서 첼로 연주를 우연히 듣게 된 저자는 떨림과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에 사로 잡혀 듣게 된다. 다음 글은 첼로에 관한 사유 깊은 문장이다.
  

 나는 다시 첼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날인가 첼로가 누군가 이 지상으로 추락한 자의 마지막 신음처럼 길고 아득하게 울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성큼 건너가려고 하는 자의 떨림처럼 흐느끼기도 했다. 허공처럼 푸른 귀를 곤두세우며 나는 가만히 첼로의 저음부를 따라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햇볕이 내려와 수천 개의 빛깔로 다시 태어나는 바다였다. 혹등고래의 그림자가 느릿느릿 지나갔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무엇인가 거대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큰 바늘이 일 년에 한 번, 작은 바늘이 백 년에 한 칸씩 움직이는 시계처럼 아주 서서히 나는 알 수 없는 해안가로 떠밀려 갔다. 지친 내 영혼이 마지막까지 불타오르며 내 전부를 삼켜 버리는 동안 나는 가까스로 어느 섬에 당도해 있었다. 내 마른 몸뚱이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내 몸을 타고 오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굵은 손가락에서 솔, 입술에서 미, 눈에서는 라, 발가락 사이로 시, 가슴 아래쪽에서는 도..... 내 몸 곳곳은 물길이 흐르는 어떤 음역에 이르러 있었다. 내 몸은 어느새 나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에게서 자클린 뒤 프레사 깨어나고 있었다. 야노스 슈타커의 차가운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73~74쪽).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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