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횟감에 버무린 글맛
싱싱한 횟감에 버무린 글맛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29 2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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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자산어보>는 1814년 손암 정약전 선생이 쓰신 어류학서입니다. 흑산도 바다 동식물에 대한 사전 같은 것이죠.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지만 사람들이 재미없어 합니다. 그래서 200년 전 흑산도 바다와 지금의 바다를 연결해 보았습니다. (중략) 선생의 실천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사연과 사연이 뒤엉키며 휘돌았습니다. 그것을 책으로 엮어 놓으니, 바다에서 실컷 뛰돌고 난 기분입니다."-저자의 말
 
[북데일리] 책<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문학동네.2014)는 2010년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새롭고 야무진 구성으로 재출간 되었다. 
 
 책에는 30종의 '갯것'들을 맛깔나게 먹는 법, 잡는 법, 다루는 법, 을 생물 사진과 곁들여 소개한다. 7살 때부터 닦아온 작가의 "생계형 낚시' 40년의 노하우로 엮어 만든 '21세기 자산어보를 통해 거문도에서 온 몸으로 살아가는 바닷사람들의 애틋한 삶을 소개한다.
 
 "손암 선생은 갈치를 무린어 無鱗魚, 즉 비늘 없는 생선 종류에 포함시켰는데 피부의 은색 가루가 비늘이다. 구아닌이라는, 색소의 일종으로 회를 먹을 때는 칼로 긁어내야 한다. 호박잎으로 긁기도 한다. 소화가 안되기 때문. 힘줄도 걷어내야 한다. 익힐 때는 상관없다. 지혈작용도 하는 구아닌은 모조진주나 매니큐어, 립스틱에 쓰인다. 키스는 비늘을 주고받는 행위의 또 다른 이름이다."(p23)
 
 저자는 갈치를 포나 회로 떠서 먹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외에도 독자들이 들으면 놀랄 만한 해산물의 비화들도 많다. 제 다리를 잘라먹고 산다는 문어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배가 너무 고프거나 저가 먹어봐도 맛있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 특히 거북손은 처음 보면 돌덩인지 음식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한편 해산물을 맛있게 먹는 요령이나 섬사람들의 상차림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이기도 하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그들은 회를 먹을 때 초고추장보다 조선간장에 마늘 설탕 고춧가루 생강 깨로 만든 양념장을 곁들인다. 그런데 실제로 알고 보면 생선회의 별미는 생선살인데 초고추장의 신맛이 맛을 반감시킨다.

 "밤낚시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달빛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텅 빈 마을길 걸어 돌아가는 맛도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회 떠놓고 한잔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밤에 하는 짓이 몇 가지 되는데 가장 훌륭한 게 이 짓이다." (p100~p101)

​ 그가 바다에서 낚아 올리는 것은 먹을거리들뿐 아니라 인생 그자체가 아닐까 싶다. 육지에서 사업을 실패하고 돌아와 잘못된 생각을 했을 때 그를 잡아 준 것은 작가의 형님이다. 짜고 비릿한 바닷가 현장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형제애로 그동안 시름을 달래느라 소주 잔께나 기울였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산물 이야기를 걸쭉하게 풀어놓지만 막상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뱃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다 속에서 숨을 참아가며 먹을거리를 캐 올리는 해녀들의 가쁜 숨비 소리가 있고,  밤배 타고 나가 처자식을 먹이는 애비라는 이름을 지닌 어부들의 삶이 절절이 녹아있다. 새로 개정된 이 책은 바다와 섬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회 안주에 소주가 고프기도 하겠다.<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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