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쓰고 맘대로 읽는 박민규 `카스테라`
맘대로 쓰고 맘대로 읽는 박민규 `카스테라`
  • 북데일리
  • 승인 2005.09.0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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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내신 등급이 꼴찌라 담임 선생님이 반 평균 떨어뜨린다고 6개월간 괴롭혔다. 그래서 소설 잘 쓴다는 사람들의 칭찬이 남 얘기같다"

소설가 박민규가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문학상이란 거 받으면 받는 거고, 못 받으면 못 받는 거고..." 그의 이같은 표현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도 유사한 분위기로 등장한다. 문장의 말미에 자주 등장했던 "그랬거나 말거나.."처럼.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도 실제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혹은 아직 사회와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는 한 남자 `나`가 주인공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나`가 그랬고 `카스테라(2005 문학동네)`의 `나` 역시 그렇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나는 82년 한국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의 골수팬이 되어 유년기와 사춘기를 거룩하게 보냈고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겪어야 했던 성장통이 독자들을 반웃음, 반울음으로 뒤범벅되게 만들었다.

`카스테라`의 나는 사뭇 다르다. 장편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친절한 설명이나 다양한 부제가 없다. `내 마음대로 썼다. 니 마음대로 읽어라`라는 분위기다.

대학 초년생인 나와 함께 자취방에서 동거하는 냉장고가 소설의 중심이다.

한여름밤, 덜덜거리는 냉장고 그리고 그의 소음, 그 소음이 시끄러워 나는 결국 애프터 서비스 맨을 불러 정중히 수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애프터 서비스맨의 반응은 저자 박민규의 성향만큼 기막히다.

처음 불렀을 때 "이제 괜찮을 겁니다", 두번째 불렀을 때 "거참 이상하네", 세번째 불렀을 때 "웬만하면 하나 사시죠", 네번째 불렀을 때 "이젠 이짓도 그만둬야겠네"라고 한다. 특히 네번째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가끔씩 그의 가족과 동네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모조리 나의 손에 의해 냉장고 속으로 직행한다.

처음에는 희대의 걸작 `걸리버 여행기`를 넣더니 그 다음은 아버지, 어머니, 학교, 동사무소, 도서관, 병원, 주변의 아는 사람들 모두를 넣은 다음 급기야 미국까지 냉장고로 넣어버린다.

냉장고로 들어가는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것과 이 세상에서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

아버지를 냉장고에 넣은 뒤 나는 문을 열고 아버지께 여쭤봤다. "지낼 만 하세요?" 그러자 아버지의 반응은 "그래, 여기 좋은 책들이 많이 있구나." 였다.

"나는 냉장고의 소음과 어느 새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가 조용해졌다. 가만히 문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하얀 카스테라가 놓여져 있었다. 그걸 본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문학평론가들은 "박민규의 소설에 마냥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작가인 그에게 빚진 게 없다는 느낌때문"일거라고 말한다. 또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웅웅거리는 냉장고때문에 잠 못 이루고 무능한 아버지부터 미국까지 모두 냉장고에 넣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며 우리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제공받으면 그 뿐"이라고 해석한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를 굴려가며 공감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의 소설과 박민규라는 작가와 한바탕 놀면 된다는 것이다.

박민규 역시 소설집 `카스테라`를 비롯해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가 빚진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박민규의 소설 `너구리`를 신문에서 처음으로 접한 어느 독자는 "와, `새끼 이외수`같다"고 생각한 다음 `삼미슈퍼...`를 읽은 뒤에는 "와 이외수가 진화한 모델이다"라고 했다.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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